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도 앓았던 것으로 알려진 ‘조울병’(양극성 장애, Bipolar Disorder)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뇌 질환이다. 이 병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2%가 앓고 있으며, 극단적 선택의 위험이 일반인보다 10~30배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환자마다 대표 치료제인 ‘리튬(lithium)’에 대한 반응이 크게 달라 맞춤형 치료법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KAIST 연구진이 리튬 반응성 차이를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과 신약 개발 플랫폼 활용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했다.
KAIST 의과학대학원 한진주 교수 연구팀이 리튬 반응성에 따른 성상세포(astrocyte)의 대사 차이를 최초로 규명하고, 이를 토대로 조울병의 맞춤형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11일 밝혔다.
▲ (왼쪽부터)의과학대학원 한진주 교수, 백규현 연구원,
김다연, 손그림, 도현수 박사
성상세포는 뇌에 존재하는 별모양을 한 세포로,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뇌 환경을 유지하는 ‘신경세포의 조력자’역할을 한다.
한진주 교수 연구팀은 기존의 신경세포 중심 연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뇌 세포의 절반을 차지하는 성상세포에 주목해, 이 세포가 양극성 장애의 대사 조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환자의 세포로부터 제작한 줄기세포(iPSC)를 성상세포로 분화(줄기세포가 특정 기능을 가진 세포로 성장·특화되는 과정) 시킨 뒤 관찰했다. 그 결과, 리튬에 반응하는지 여부에 따라 세포의 에너지 대사 방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확인됐다.
리튬 반응이 없는 경우, 세포 안에 지질 방울(lipid droplet, 아주 작은 지방저장소)가 과도하게 쌓이고, 미토콘드리아(세포의 발전소) 기능이 떨어지며, 포도당 분해 과정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젖산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는 등 뚜렷한 대사 이상이 나타났다.
특히 리튬 반응 환자의 성상세포는 리튬 처리 시 지질 방울이 감소했으나, 비반응 환자에서는 개선 효과가 없었다. 더불어 환자 유형에 따라 성상세포가 생성하는 대사 산물에도 뚜렷한 차이가 확인되었다. 즉, 리튬 반응에 따라 세포의 에너지 공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대체 경로를 과도하게 활용하면서 부산물이 쌓이는 현상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이번 성과는 양극성 장애(조울병)에서 성상세포가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입증한 것으로, 리튬 반응성 차이를 설명하고 환자별 맞춤 치료 전략의 길을 연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한진주 교수는 “성상세포를 표적으로 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져, 기존 약물에 반응하지 못하던 환자들에게도 더 나은 치료 전략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신경정신질환 분야 세계적인 학술지인 몰레큘라 사이카이트리 (Molecular Psychiatry) 온라인판에 8월 22일자로 게재되었다.
※ 저자 정보: 의과학대학원 백규현, 김다연, 손그림, 도현수 박사(KAIST, 공동 제1 저자) 및 한진주 (KAIST, 교신저자)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그림. 양극성 장애 환자의 성상세포가 신경세포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가) 신경세포가 흥분하여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성상세포는 신경세포가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젖산을 분비한다. 흥분한 신경세포는 지질 성분도 함께 방출하게 되는데, 이는 신경세포의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성상세포는 신경세포가 방출하는 지질 성분을 흡수하여 지질 성분이 신경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줄인다. (나,다) 양극성 장애 환자의 성상세포는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되고, 해당작용이 증가하여 젖산이 과다 분비되는데, 이는 대조군에 비하여 과도하게 흥분하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신경세포에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성상세포 내 지질 방울이 증가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 리튬 반응성 여부와 무관하게 양극성 장애 환자의 성상세포에는 지질 방울이 증가되어 있음이 관찰되었다. (다) 리튬에 반응하지 않는 성상세포의 경우 리튬 반응성 성상세포에 비하여 신경세포를 더 과도하게 흥분시킨다. 더욱 과도한 흥분은 신경세포에서 지질 성분을 더 많이 생성하게 되고, 이를 성상세포가 더 많이 흡수하게 된다. (라) 리튬 반응성을 갖는 환자의 성상세포에 리튬을 처리하면 지질 방울의 양이 감소한다. 이러한 현상은 리튬 반응성 환자에서만 보이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