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금세 사라지지만, 어떤 기억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이처럼 ‘오래 남는 기억’은 학습과 경험 축적의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노화로 인한 인지 저하나 치매 같은 뇌 질환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하지만 그동안의 기억 연구는 주로 신경세포인 뉴런에만 집중되어 있어, 기억이 장기간 유지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장석복)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은 한국뇌연구원(KBRI)과 공동연구를 통해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뇌 속 별세포(Astrocyte)에 있음을 규명했다.
▲(왼쪽부터) 고우현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및교세포연구단 연구위원,
김하영 석사과정연구원(제1저자), 임지운 석박사통합과정연구원, 김주영 박사후연구원.
연구진은 별세포 내 단백질 Ank2(Ankyrin-2)가 장기 기억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별세포 신호만 선택적으로 조절해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음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연구진은 뇌에서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별세포에 주목했다. 특히 별세포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단백질 Ank2가 기억 유지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 하에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별세포에서만 Ank2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는 학습 직후 확인한 최근 기억은 정상적으로 유지됐지만, 2주 뒤 측정한 장기 기억은 현저히 감소했다. 또한 Ank2가 없는 별세포는 구조가 단순해지고, 기억을 저장하는 엔그램(engram) 신경세포와의 물리적 접촉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하여, 학습과 기억 형성에 핵심인 장기강화(Long-Term Potentiation, LTP)의 유지 능력 역시 저하됐다. 이는 별세포가 단순히 신경세포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기억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기억 유지 과정의 분자 메커니즘도 추가로 규명했다. 분석 결과, Ank2는 별세포 내 칼슘 신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nk2가 제거되면 세포 내 칼슘 신호가 약화되고, 이에 따라 신경세포 간 연결을 강화하고 기억 형성을 돕는 핵심 단백질인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에 대한 반응성이 감소했다.
연구진은 별세포 BDNF 신호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했을 때 기억 유지 능력을 높일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을 활용해 별세포 내 BDNF 관련 신호 경로를 선택적으로 자극한 결과, 실험동물은 기존보다 기억을 더욱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신저자인 고우현 연구위원은 “그동안 신경세포 중심으로 이해돼 온 기억 연구의 관점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기억 유지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노화나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다양한 기억 관련 뇌 질환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향후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와 같은 뇌발달장애에서 별세포의 Ank2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8.1) 에 7월 7일 오후 6시(KST) 온라인 게재됐다.
[용어설명]
엔그램(engram) : 학습 후 뇌에 형성되어 특정 기억을 저장하고 이후 기억 회상에 관여하는 신경세포 집단
장기강화(Long-Term Potentiation, LTP) : 기억 형성 과정에서 뇌세포 사이 신호 전달이 강화돼 오랫동안 유지되는 현상
광유전학(optogenetics) : 빛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단백질을 이용해 세포 내 특정 분자 신호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기술

그림 1. 별세포가 장기 기억을 유지하는 핵심 조절 메커니즘

그림 2. 기억 형성과 유지의 핵심 뇌 영역 해마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별세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