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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파도 걱정 없는 세상을 꿈꾼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클리닉저널 2020 우수콘텐츠잡지 선정 기념 특별 인터뷰

우리는 누구나 환자가 될 개연성을 갖고 있다. 대학의 저명의사도 미래 언젠가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의료인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환자중심의 시각에서 의료서비스 문제를 점검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클리닉저널은 2020년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를 만났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0년 동안 보건의료 제도와 법률을 환자중심으로 개선하는 활동을 해왔다. 환자 목소리를 대변해온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활동을 통해 투병환경 문제점과 환자 권익 증진 개선책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병원에서 환자안전, 환자경험이 강조되고 있는데요. 국내 보건의료환경이 ‘환자 중심’인지 ‘공급자 중심’인지 환자단체의 평가가 궁금합니다.

 

예전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죠. 변하고는 있어요.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될 정도로 변한 건 아니에요. 보건의료환경이 환자중심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러나 실제로 환자중심적이진 않아요.


그동안 환자단체에서도 꾸준하게 환자중심으로 보건의료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병원에서도 환자중심병원을 하겠다면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실질적인 환자중심은 아직 아닌 것 같아요.


환자중심이라 함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나 환자안전 환경에서 환자가 중심이 되는 걸 말하는데 이제 목소리를 내는 수준이지 의료 환경에 구체적으로 환자의 요구가 반영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환자가 병원을 공짜로 다니는 건 아니잖아요. 비용을 내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비용만한 대우를 받는가는 의심스럽죠.

 

아직까지 국내 보건의료 환경은 공급자중심, 의료인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거네요?


그렇죠. 환자의 목소리보다는 보건의료공급자 목소리가 의료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많죠. 제도설계 자체도 의사중심, 병·의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요. 만성질환관리만 보더라도 환자 중심이라기보다는 병원 중심모델로 설계되어 있잖아요. 그래도 과거와 비교하자면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치료결정에서도 SDM이라고 환자 의사가 치료결정을 상의해서 진행하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어요. SDM, Share Decision Making이라고 하는데 백혈병 치료를 예로 들어보면 항암을 할지 골수이식을 받을지 치료방법을 의사와 환자가 같이 결정하는 추세예요. 예전에는 치료결정에 의사가 지시하는 방안을 무조건 따랐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환자의 의견을 들어주고 선택지를 설명해주고, 환자 가치관을 잘 반영해 치료를 결정해요.


SDM의 장점은 치료결과에 따른 분쟁의 여지가 적다는 점이에요. 근데 문제는 이를 적용하는 병원이 소수라는 점이에요. 진료시간도 길어져야 하고 수가논의도 해야 해서 SDM이 활성화되긴 어렵죠. 환자중심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적다고 말하는 이유죠.


병·의원은 인력문제나 수가개선이 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주겠다고 해요. 저희 환자들은 일단 시작하자, 그다음에 수가나 인력을 요구한다면 힘을 실어주겠다고 말하고요. 사실 실제 수가나 인력에 재정을 투여해봤을 때 서비스 개선은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고,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아직 부족하니 더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에요.

 

환자안전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중대한 안전사고는 의무 보고되는데요. 의료계에선 법안 개정이 과중한 책임을 부과하는 규제로 작용할 거라는 우려가 있어요.

 

당연히 규제가 추가된 것이 맞습니다. 환자안전법에는 개정된 내용이 많이 있는데, 중대한 환자안전사고를 의무 보고하는 것은 대표적인 규제죠. 사실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서 환자안전법 초안을 만들 때도 의무보고 사항은 있었어요. 법 제정 초반에 의료계에서 워낙 강한 반대를 해 빠진 거였어요. 그런데 2-3년간 법안을 시행해보니까 자율보고 활성화는 안됐고, 보고됐다 하더라도 그 내용의 상당수가 경미한 환자안전사고였어요.


중대한 안전사고가 보고되고, 재발방지책 마련으로 이어졌어야 했는데 자율보고 체계에서는 그게 제대로 안됐던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재윤이법’이라고 환자안전법 개정안이 발의된 거예요. 이 의무보고가 당연히 규제 추가임에도 국회를 통과한 건 규제가 가지고 오는 부담감 이상의 순기능, 생명을 지킨다는 것에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으로 봅니다.

 

통과된 법안은 의료계 합의 수준으로 낮춰진 거라고 들었는데, 환자단체는 더 강력한 법안을 바란 건가요?

 

네. 지금은 투약오류나, 치료환자가 바뀌었다는 등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의료사고에만 의무보고하게 되어있어요. 저희는 이런 특별한 경우뿐만 아니라 의료과실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다 보고하길 바라죠.


원래 환자안전사고의 기본 핵심은 보고와 보호예요. 이미 발생한 사건에 역점을 두기보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지만 안전장치 1, 2단계가 작동해 사고 발생을 막은 사건도 보고하는 것이죠. 사망이나 상해가 발생한 사건뿐 아니라 하마터면 발생할뻔했던 근접오류까지 보고해 ‘나는 예방했지만 다른 사람은 예방 못할 수 있는 사건’까지도 관리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사실 이게 이뤄져야 전체 사건이 보고되고 분석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법안은 보고범위가 많이 줄어든 것이죠. 그래도 저는 이 법안이 비록 투약오류나 대상오류의 경우 의무보고로 한정되어 있지만,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 사례만 보고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또 반대로 자율보고가 잘 돼서 굳이 의무보고가 확대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요. 사실 결국은 자율보고가 잘되지 않기 때문에 의무보고 규정이 들어간 거고, 자율보고가 잘 되면 의무보고 규정이 늘어날 이유가 없죠. 어쨌든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많이 보고되어야지 예방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개정안이 의미 있다고 봅니다.

 

의료계에서는 ‘최선의 진료는 환자가 신뢰해줄 때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의사와 환자 관계 개선,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나요.

 

환자와 의사가 관계 개선이 필요한 게 있나요? 저는 대부분의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좋다고 봅니다. 제 관점으론 우리나라 의사들 99%는 좋은 의사예요. 환자의 생명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밤잠도 포기하는 그런 좋은 의사죠.


문제는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을 행하는 1%의 나쁜 의사들에게 있어요.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거나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의사들, 환자를 환자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종속된 사람처럼 생각하는 등의 1% 나쁜 의사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들이 환자에게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피해를 입은 환자가 입소문을 내는 등 1%의 의사와 환자의 사이가 나쁜 거지 대부분 환자 의사 관계는 좋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환자와 의사 라포가 깨졌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워요. 진료 현장에 가면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좋고 치료가 잘 이뤄지걸요. 개중 의료사고가 발생해 소송과 분란이 나오는 거고 비인격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일부 의사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경찰과 검찰, 복지부와 시민사회는 이런 1%의 나쁜 의사를 감시하고, 다른 선량한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따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올해 시급하게 입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항이 있나요?

 

두 가지 중요한 법안이 있어요. 의료기관 내 CCTV관리법과 사과법이에요.


CCTV관리법을 설명하기 앞서 ‘두 번째 예강이법’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진료기록원본과 수정본을 모두 발급해주는 법안인데요. 기존에는 환자가 진료기록을 요구할 경우 수정한 것만 줬어요. 그런데 ‘예강이법’으로 진료기록 원본을 보존해야 하고, 요구하면 진료기록원본과 수정본을 모두 주도록 하게 됐어요. 의료기관 내 CCTV관리법은 이보다 더 큰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CCTV는 의사입장에서 부담이 될 거예요. 그래서 의료계는 수술실 CCTV설치를 막아왔고, 총력으로 반대해서 지금은 통과까지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수술실 CCTV 법안을 생각해볼 때 응급실 CCTV 도입도 비교해서 살펴봐야 해요. 의료계가 수술실 CCTV는 반대하는데 응급실은 대찬성해서 모든 응급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응급실이나 수술실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지 환자 신체노출이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도 응급실은 의료계가 요청해서 시행되고, 수술실은 의료계의 반대로 안된다는 건 결국 응급실 CCTV는 의료계 입장에서 유리한 거지만, 수술실은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응급실 CCTV도 병원이 유리하면, 활용하고 불리하면 삭제한다는 거예요. 현재 CCTV가 의무기록지로 분류가 안 되어있기에 병원에 법적제재가 없어요. 그래서 4월,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제일 먼저 추진할게 의료기관에서 촬영된 CCTV영상을 의사가 보지 못하도록 하고, 소송이나 수사, 조정이나 중재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발의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의료행위 정보를 의사만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의료기관에서는 물론 일부 제한은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임의로 볼 수 있는데 환자는 병원에서 주지 않으면 볼 수 없게 되어있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의무기록지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CCTV영상이 더 중요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단체는 CCTV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되는 건 모든 촬영영상을 병원이 유리할 때는 활용하고, 불리할 때는 임의로 삭제하는 것이 허용되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준비 중인 법안은 사과법이에요. 의료사고 피해자와 오랜 기간 활동을 해오면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소송을 하고, 의사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사과받지 못해서라는 걸 알게 됐어요. 피해가족들은 어쩌면 사과까지는 바라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많은 유가족들이 보상, 소송 다 필요 없고 담당의사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하거든요. 그동안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한 팀으로서 담당의사가 내 가족이 왜 죽었는지 설명해주는 걸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환자가 죽었다는 이유로 의사는 유가족에게 설명해주지도 않고 심지어 만나주지도 않는 것에 대한 상처들이 있거든요. 적어도 피해자에 대한 인간적인 예우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요구들이 있어요.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거니까 부담스럽다면, 유감의 표시나 애도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요.


설명과 유감 표시만 제대로 된다면 의료분쟁의 상당수를 예방할 수 있을 거라 봐요. 미국이나 홍콩과 같은 몇 개 나라에서는 ‘진실말하기’ 법안이 있다고 해요. 이 법안은 일정기간에 의사가 환자와 가족에게 유감의 표시를 하는 경우, 그 발언을 가지고 형사 처벌을 하는 증거로 삼지 않는 법이에요.


우리가 환자안전법을 처음 제정할 때 이것을 넣었는데 반영되진 않았어요. 환자안전법안과 성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요. 환자안전법은 환자사고 발생을 예방하는 건데 이 법안은 사고발생 후 사과하는 거잖아요. 사후 문제라서 법안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사과법에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요구가 많아요. 의사들이 설명하고 유감의 표시를 하는 경우 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더 많이 설명해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겠냐는 환자들의 기대감이 있어요.


물론 일부 환자는 면책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 환자안전사고 발생한 후에 의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의료사고를 인정하며 ‘장례 치르고 나면 검토 후 보상도 해주겠다’고 말하다가 막상 장례 치르고 났더니 증거도 조작해버리고 발뺌하면 부검도 못하게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요. 하지만 다수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요구하고 있어요.


물론 설명, 유감 표현에 면책한다 하더라도 의무기록지에 명시된 것은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애도의 표시만 증거능력이 없게 하는 거죠. 사실 사과법의 장점이 환자입장에서 의료사고 생각도 안 했는데, 의료사고인걸 알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는데 사과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법안에 대한 의료계와의 입장차, 분쟁 이야기가 환자단체에서 많이 나와요. 그래서 의사와의 관계개선이 필요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분쟁이 있다고 신뢰관계가 깨졌다는 건 아니에요. 주위에 상당수 의사는 괜찮은 편이고, 서비스가 좀 더 친절하고 덜 친절한 이런 개념이죠. 만약 신뢰관계가 깨졌다면 환자는 그 병원에 안 다녀요. 환자와 대형병원 사이에 컴플레인도 많다는 의견도 있어요.


그런데 환자가 수년간 투병하다 보면 의사랑 오해도 생기고 다툼이 생길 수 있는 거지, 라포의 문제는 아니에요. 환자가 만약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병원을 옮기겠죠. 믿지 않는데 어떻게 자기 가족을 맡기겠어요.

 

올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고 하던데 이를 계기로 생긴 변화가 있을까요?

 

창립 10주년을 맞아 생긴 가장 특별한 변화는 비전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해요. 환자중심의 보건의료환경을 조성하는 게 지난 10년간의 비전이었는데 이게 어렵고 와 닿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보건복지부나 의료공급자가 많이 쓰는 ‘환자중심’이라는 굉장히 큰 어젠다에 ‘보건의료 환경’이라는 전체를 아우르는 배경을 조성한다는 건 의미는 있었지만 환자입장에서는 와 닿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아파도 걱정없는 세상’으로 비전을 바꾸게 됐어요. 지금은 아프면 걱정 많은 세상이죠. 특히 중한 병일수록 치료비, 혈액, 치료약제 등 걱정이 많거든요.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환자단체연합회의 중요한 존재 목적이겠다는 합의가 나왔어요.

 

환자단체연합회는 비전인 ‘아파도 걱정 없는 세상’을 이루어 가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요?

 

2029년까지 앞으로 10년간 추진할 장기미션을 먼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 단체가 법도 만들고 제도개선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부족한 점도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10년간 열심히 활동했더니 정부, 국회, 의료공급자단체까지는 환자 목소리를 듣기는 합니다. 문제는 환자의 목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실제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반면에 의료공급자들이 정부, 국회에 요구하면 적극적으로 의견 반영을 잘해주죠. 사실 예전에는 환자가 요구하면 듣지도 않았고, 환자를 만나주지도 않았어요. 이제 사회가 어느 정도 환자중심을 이야기하면서, 환자의견 청취는 해요. 그런데 반응은 없어요. 왜 그런지 살펴보니, 환자단체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의료공급자단체는 정책연구소 같은 것이 있어서 요구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주니까 추진이 가능한데, 환자단체는 목소리만 있고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요. 그래서 우리도 이번 기회에 정책연구소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렇게 만들다보면 투병연구소 안전연구소도 만들어야겠기에 아예 학회를, 대한환자학회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환자학회에서 춘·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어젠다를 정해 그에 맞게 정부나 전문가 그룹에 연구를 요청하고 우리 단체도 연구력을 키우는 학회를 설립·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입니다.


또 다른 장기미션은 ‘환자법’을 만드는 거예요. 최근 CCTV 설치법 때문에 환자역량이 커질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술실 CCTV 설치에 의사들은 강하게 반대했고 이 때문에 법안이 폐기, 재발의 되는 상황을 거치면서 환자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도출했어요.

예를 들자면, 소비자단체는 소비자기본법이있고, 장애인단체는 장애인복지법이라던가 차별금지법 등이 있어요. 또 비영리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라는 법이 있거든요. 그런데 환자단체는 없어요. 위에 언급한 단체들의 법안에는 자기 단체 정의부터 포함되어 있지만, 환자 정의는 의료법에도 약사법에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환자를 위한 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판단 아래 아직은 가칭이지만, ‘환자의 투병·사회복귀 지원과 권익 증진법’을 만들려고 해요. 여기에 환자단체 정의도 넣고, 환자의 투병, 사회복귀, 권익 증진의 내용을 담은 법을 만들게 되면 환자단체 역량이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환자와 관련한 법률을 제정해둔 나라가 북유럽 쪽에 두 군데 있더라고요.


법 제정 외에도 환자투병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주는 센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것도 가칭이긴 하지만, ‘환자투병통합지원센터’를 설립·운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모델은 서울에 있는 여성플라자와 같이 ‘환자플라자’의 개념으로, 투병을 지원해주는 기능을 하는 센터예요. 예를 들어 내가 폐암에 걸렸다면, 센터 콜센터에 연락해 기본상담도 받고 센터는 폐암환우회를 연결해주는 등의 역할을 하는 거죠. 필요하다면 직접 와서 치료 지원, 도움도 받을 수 있고요. 서울에서 먼저 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잘되면 광역, 지역마다 설치되면 좋을 것 같아요.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이 있나요?

 

올해는 환자단체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요. 환자는 대체로 약해요. 특히 중증환자는 의사 말 한마디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랑 환자는 달라요. 소비자는 공급자랑 대등하지만, 환자는 나의 생명이 의료진에게 달려있다는 이유에서 권리주장을 강하게 할 수 없어요. 환자가 나약할 수밖에 없기에 역량이 튼튼한 환자단체가 필요해요. 그래서 올해 역량강화 프로그램 진행하려고 해요. 코로나바이러스가 좀 진정되면 시작하려고 하는데, 연 10회 정도 하면, 10년이면 백번이잖아요. 아마 10년 후쯤에는 환자단체역량이 커져서 의료공급자 단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까지 자라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업으론 의료사고 피해자 울분 해소방안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미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유명순 교수가 책임 연구원으로 ‘의료사고피해자 울분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의료사고 가해자, 이를 2차 피해자라고 하는데요. 의료기관에선 가해의료인을 상대로 휴가, 경제적 지원, 심리치료도 지원해주고 그러거든요. 가해자 지원도 필요하지만, 의료사고 피해자가 더 중요하잖아요. 초기에 설명 듣지 못했고 제대로 사과받지 못했던 이 피해자들의 울분해소 방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이 울분이 해소되지 않으면 의료인에게 폭언하거나 폭행을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울분해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환자중심의 당뇨병 관리모델 연구를 진행하려고 지난 3월 5일 킥오프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환자중심 당뇨병 관리모델은 지금의 당뇨병 관리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현재 당뇨병 시범사업 중심에는 의원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환자가 의원에 방문하고 의사, 간호사, 영양사가 환자의 케어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는 모델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환자중심 당뇨병 관리는 병원에서 하는 검사, 약국에서 받는 복약지도 등 모든 것을 기본으로 하되 관리의 중심에 환자가족과 IoT 기술을 두는 거예요. 사실 지금은 만성질환관리에서 실제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가족이 맡고 있거든요. 저도 아버지 혈당체크를 제가 직접 하고요. 또 요즘은 만성질환 관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술이 많이 있어요.


기술이 결합된 앱도 많이 나오고요. 40-50대 젊은 사람들의 경우 IoT기술을 활용한 웨어러블로 혈당측정 등 효율적인 질환관리를 하고 있어요. 무인자동차, 인공지능도 활성화되는 마당에 앞으로는 더 환자 중심으로 구조가 바뀌겠죠. 우리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단체 대표 5명하고 재능기부를 해주실 한 분을 추천받아, 연구진행을 하고 그에 따른 발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체역량 강화를 많이 강조하는데, 단체의 힘을 키울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이 있나요?

 

얼마 전 환자단체의 수요 조사를 했어요. 환자단체 역량강화를 위해서 뭘 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후원금모금 관련, 보도자료와 같은 공식입장을 작성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응답이 제일 많이 나왔어요. 이외에도 기획·보고서를 마련할 수 있는 인력 지원, 보건의료 스터디, 법인 설립에 대한 도움을 받고 싶다는 등 요구가 있었어요.


저는 단체 역량강화를 위해 먼저 단체가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조직적, 사업적 능력을 고루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이번에 환자단체 재정 운영원칙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환자단체는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사업도 기획하고 수행할 능력이 있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이해가 상충되는 단체로부터 재정이 독립돼야 자체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봐요.


단체마다 이해상충이 있는 단체, 기관, 기업이 있어요. 환자단체는 제약사, 의료기기사, 보건의료공급자단체를 이해상충이 있는 기업이라고 분류를 해요. 여기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으면 거버넌스에 들어올 수 없는 게 원칙인데요. 사실 지금 개별단체마다 후원금을 받는 것이 다 달라요. 이해가 상충되는 단체에게 후원금을 절대 받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간접적으로 받는 곳도 있고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우리 환자단체연합회 입장이 중요하다고 봐요. 이에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원칙을 세우고 이해 상충되는 단체에서 재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재정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또 올해 환자 샤우팅카페와 환자포럼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이 두 개를 활성화해 환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책·제도·법률 개선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하는 것에 집중할 계획이에요.


환자단체는 지난 2012년부터 환자의 의료민원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고자 환자샤우팅카페를 운영해왔는데요, 올해부터 시즌2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유튜브를 활용해 제작 비용규모를 줄이고 기존의 자문단 중심이 아니라 패널중심으로 20-30명의 환자가 모여 소통의 기회를 자주 가질 생각입니다. 이렇게 샤우팅카페를 통해 목소리가 나온 것 중에서 제도화가 필요하고 법률을 통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환자포럼과 연결하여 사회적 공론화를 하려고 해요.


이외에도 다양한 공익캠페인 추진을 할 예정이에요. ‘내 질환 바로알기 캠페인’, ‘환자 동의서 바로알기 캠페인’, ‘올바른 입원생활 길라잡이 캠페인’, ‘약올바르게 복용하기 캠페인’, ‘환자중심 임상시험 환경 조성 캠페인’, ‘환자 인식 개선 캠페인’ 등 연합회 차원에서 9개 캠페인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건강증진을 위해 의료계, 제약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환자단체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환자랑 의사 사이에 이해가 상충되는 것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해요. 의사랑 환자가 바라는 건 같기 때문이에요. 제약회사도 마찬가지죠. 환자가 잘 치료받고 좋은 약 생산해서 빨리 공급받는 것, 환자랑 이해가 똑같아요. 의사랑 달리 제약의 경우 다를 게 하나 있다면 약값일 텐데, 이마저도 보험이 되면 환자와 제약사도 이해 상충되는 것은 없죠. 암환자나 희귀질환자의 경우 본인부담을 5~10% 밖에 안 내고, 일반 환자도 건강보험 적용만 되면 본인이 부담하는 약제비가 적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환자 건강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의사들은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환자단체와 교류가 잘되다가 안 되거나 하는 부분이 있는 것, 이런 점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약 산업계도 마찬가지죠. 산업계가 환자단체를 잘 안 만나니까 뒤로 만나는 문제가 생겨나거나, 여기에 이용당하는 환자단체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해가 같은 의료계, 제약산업계, 환자는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하되, 환자의 더 나은 투병생활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논의할 수 있는 소통의 자리 마련, 이게 건강증진을 위해 함께 노력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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