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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갑식 동신병원 원장 겸 이사장

어느 조직의 장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봉사’

갑식.
그는 많이 바쁘다. 사회적으로 맡고 있는 직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본직은 동신병원 원장이자 이사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시병원회 회장이며,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이다.
또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전국회장도 맡고 있다.


이렇듯 맡은 직책이 다양하여 바쁜 중에도 그의 인간관계의 폭은 대단히 넓다. 정계와 관계에 두루 지인을 두고 있고, 평소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역시 김갑식 원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저의 신조라고 하면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은 그 일이 내가 목표로 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은 그 어는 것도 보지 않고 오직 목표로 한 일만을 위해 매진을 합니다. 이렇게 파고드는 저의 성격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신병원을 서울 서대문구에서 세브란스를 제외하고는 규모가 가장 큰 병원으로 일으켜 세운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물음에 김갑식 원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한마디로 목표를 향해 오직 앞만을 보고 달려 온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교육을 마친 후 대학에 남으라는 주임교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당시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교수님의 그 고마운 말씀에 순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학에 남는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며 본인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일 겁니다. 그러나 그 행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한 것이 당시의 내가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개원을 했고, 이후 몇 년 동안 그야말로 몸이 부셔지도록 일만 했습니다. 정말이지 다른 그 무엇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어느 정도 재산이 모아졌고, 그 때 마침 매물로 나온 지금의 동신병원을 인수하게 된 것이지요.”


김 원장은 본인의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전재산을 병원인수에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지인의 소개로 인수한 당시의 서울간호전문대학 부속병원에 들어가 보니 너무도 난감한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시설은 물론 의료진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의 모습이 도저히 병원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김 원장은 그 당시의 상태를 “도깨비 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여섯 병상에 불과한 중환자실에는 단 한명의 환자도 없었고, 병실은 150개가 있었지만 입원환자는 물론 외래환자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병원인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생각은 동신병원을 ‘병원다운 병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고, 자신의 결심을 관철시키기 위한 김 원장 특유의 저돌적 성격이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오늘의 동신병원을 만들기까지 겪은 어려움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1993년 병원을 인수 한 후 열심히 일을 하면서 병원의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여 병원다운 병원으로 만들어 갔지만 갑작스러운 IMF와 이어 불어닥친 의약분업 사태는 김 원장의 열정에 찬물을 끼언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타고난 저돌성은 이런 사태에도 조금도 꺾이지 않고 그 진가를 발휘하여, 스스로 토로하듯이 ‘정말 원없이 일을 했고, 그렇게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은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을 할 만큼 그는 동신병원을 ‘병원다운 병원’으로 일으켜 세우는데 성공을 했다.


‘도깨비 굴’이라고 표현이 될 만큼, 도저히 어떻게 감당해야 할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던 동신병원을 이제 서대문구 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병원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기까지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김 원장의 열심을 다하는 노력의 결과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병원장이 환자진료에 전념하는 것을 본 다른 스탭들 역시 이에 동화되어 환자진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또 모든 임직원에 대해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줌으로써 병원의 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훈조차 ‘진실’, ‘성실’, ‘노력’이다.


“제가 나름대로 동신병원을 성공한 병원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물러설 수 없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이 큰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저의 전재산을 투입했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물러날 수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그 때의 상황은 배수의 진을 친 병사들의 심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 원장은 이렇게 겸손하게 말을 하지만 그 겸손한 말 속에서 그동안 그가 겪어 온 절박했던 삶의 여정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모든 병원에 원장님들이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계시듯이 저 역시 저의 동신병원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 가운데 하나는 환자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은 덜어주면서 최고의 진료를 제공해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김 원장의 자부심을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복통으로 내원한 한 환자가 대장암으로 진단되고, 암세포가 간에까지 전이된 것으로 판명이 되어 대학병원의 수술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환자의 경제적 상황이 그렇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김 원장은 외과과장과 협의하여 인근 유명 대학병원의 대장암전문 외과교수를 초빙하여 수술을 집도토록 함으로서 환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대학병원급의 수술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환자중심의 병원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 것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환자중심의 병원 운영이 ‘도깨비 굴’과 같은 병원에서 서대문구 지역의 거점병원으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동신병원을 일으켜 세운 김갑식 원장은 환자만이 아닌 사회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의 눈길을 돌리게 된다. 먼저 지역사회를 위한 일을 시작했고, 이와 함께 자신의 천직인 의료부문과 관련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동신병원을 인수한 후 주어진 제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병원으로 탈바꿈하기까지 정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제 나름대로 세워 둔 계획이 있었지요. 병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기간을 정해 그 기간 동안에는 온 힘을 다하여 일을 하되 그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 그러면서도 사회를 위해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해 보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게 세워 둔 계획은 다행히 차질없이 이루어져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 지역사회에서의 봉사와 병원계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전체 병원들의 구심체인 대한병원협회 서울지부인 서울시병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얼마되지 않아 감사로서 본격적인 병원계 일을 시작했다. 이 감사 일은 여러 명의 회장이 바뀌면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어 대한병원협회 이사와 감사를 맡아서 일을 해왔고, 2014년 5월 당시 서울시병원회장을 맡고 있던 박상근 회장이 대한병원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자리를 승계한데 이어 2015년 3월 정기총회 인준을 거쳐 서울시병원회장에 정식으로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서울시병원회 회장을 맡으면서 대한병원협회의 당연직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범죄로 인한 피해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법무부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일도 해 오다가 지금은 이 지원센터 전국회장까지 맡고 있다.


김 회장이 서울시병원회장으로서 회무에 임하는 자세는 지금까지의 회장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 주위에서의 이야기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와 병원계 모두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김 원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국회의원들에게 메르스 사태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의하고,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장을 찾아가 메르스의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등 주위에서 허둥지둥 하는 사이에도 냉철한 판단력으로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다.


“메르스 사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마도 의료기관, 특히 몇몇 대학병원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에선 메르스가 병원의 잘못으로 확산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메르스에 대한 잘못된 대처방안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서울시장님을 만났을 때 이 점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씀을 드렸었지요. 그 내용은 메르스와 같은 감염성질환이 발생하게 되면 대학병원이 아닌 시·도립병원이 즉각적으로 해당 전염병을 위한 전담병원으로 전환하여 환자를 진료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시장님도 이 의견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김 원장이 서울시병원회장을 맡으면서 차별화된 것은 병원회의 열악한 재정을 감안한 재정지원이다. 김 원장은 서울시병원회장 후보로 나서면서 이같은 재정지원을 약속했고. 지난 2년 동안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켜오고 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장이라는 직책이 ‘명예’가 아니라 ‘봉사’라는 신념을 가졌기에 가능했으리라고 보여진다. 병원계 일과 병행하고 있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도 적지 않은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가 하면 대학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원들 가운데는 환자치료에 사용한 고가의 비급여재료를 환자에게 부담토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저희 병원에선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주위에선 이를 보고 병원경영을 힘들게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에 대해 저는 자신있게 말해 줍니다. ‘자금관리를 원칙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여 자금누수가 발생하지 않으면 적자없이 효율적으로 병원을 경영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적지 않은 비용을 사회활동에 쓰면서도 병원경영을 무리없이 해나가고 있는데 대한 김 원장 나름대로의 답변이라면 답변일 수 있겠다.


김 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병원계 일을 보아 오면서 나름대로 형성된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 사재를 털어 병원계 일을 하는 것도 그 같은 철학에서 빚어진 행동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무엇보다 듣는 이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어느 조직의 장이 된다는 것이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봉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자신이 많은 것을 받았으니 그만큼 베푸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다.


“앞으로 이러한 병원 밖에서의 일들을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흐트러짐없이 해나가려고 합니다.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 다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어요.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니까 얻은 만큼 베푸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갖고 일을 하다보니까 그 일들이 너무도 재미있고 보람이 되는 겁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김 원장의 또다른 특징은 그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는 지인들이 지금은 그 아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저명인사가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조금도 변함없이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남다른 그의 ‘사람사귐’의 비법(?)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 말은 한번 사귀면 오랫동안 그 관계를 유지시키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사람을 사귐에 있어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이 뛰어나다. 그것이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이끌어 내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김 원장 본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러한 원만한 인간관계, 무엇보다도 정·관계에 걸친 두터운 인맥들은 그가 추진하는 여러 사회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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