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테러의학 분야의 앞으로의 과제는 “빈틈 메우기”와 “앞을 내다보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부족한 부분들을 연구와 정책으로 채워나가 빈틈없는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미래의 테러 양상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최근 ‘대테러의학’에 관한 책을 출간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는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신희준 교수의 말이다.
신 교수는 조선의대를 졸업하고, 일산 백병원 임상강사와 제주한라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그리고 순천향대 구미병원 조교수를 거쳐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순천향부천병원 응급의학과에 몸담고 있다. 특히 신 교수는 국제재난의학회 펠로우와 미국 하버드대학병원 재난의학 펠로우쉽, 하버드의대 연구 펠로우 등의 경력과 함째 현재 순천향부천병원 재난의학센터장을 맡고 있다.
Q '대테러의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저서를 집필하시게 된 배경과 동기, 그리고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재난의학에 몸담아 오며, 특히 테러 상황에서의 의료 대응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2022년에는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병원에서 재난의학 펠로우십을 수행하며 세계적인 재난의학 석학들과 훈련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처음 접한 개념이 바로 “대테러의학 (Counter-Terrorism Medicine, CTM)” 입니다. CTM은 2017년 보스턴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와 하버드 의대의 재난의학 팀이 처음 국제학술지에 소개한 재난의학의 하위 전문분야로서, 테러 공격이나 관련 재난 상황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분야입니다. 다시 말해 테러로 인한 의료적 피해를 예방하고 완화하며 피해자의 건강 결과를 최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야이지요.
제가 펠로우십을 수행할 당시, 이 CTM 분야가 국제적으로 막 주목받고 있던 터라 큰 영감을 받았고, “한국에도 이 개념을 도입해보자”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지요. 마침 저의 스승이신 하버드의 Gregory Ciottone 교수께서도 재난의학을 “위기 상황의 의료 처치와 응급관리의 결합”으로 정의하셨는데, 저는 의료와 위기관리의 결합인 재난의학의 새로운 분과로서 CTM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테러가 일상적이지 않은 나라라 처음엔 이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질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 의료가 국민 안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저희로선 새로운 영역인 『대테러의학』 교과서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CTM의 개념과 역사, 세계 각 지역의 테러 양상 등을 개괄한 뒤, 교육 기관 테러, 응급의료체계 테러, 교통수단 테러, 드론(무인항공기) 테러, 병원 테러, 자살 폭탄 테러 등 다양한 유형별로 테러리즘의 특성과 의료 대응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하이브리드 전쟁과 사이버 테러, CBRNe 테러(Chemical, Biological, Radiological, Nuclear, and Explosives) 같은 신종 위협도 심도 있게 조명했고, 마지막으로 위협 인식 교육에 관한 장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대비해야 할 사항을 정리했습니다. 쉽게 말해, 테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위협까지 망라하여 의료 대응 전략을 제시한 종합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특정 전문직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응급의학, 외상학, 중환자의학, 감염학, 정신건강의학 등 다양한 의료 분야의 지식이 동원되기 때문에, 의사뿐 아니라 재난관리자, 1차 대응요원, 구급대원, 보건의료인, 병원 경영자, 경찰·소방·군인, 정책입안자, 그리고 관심 있는 일반 시민까지 두루 읽고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테러와 재난 대응에 관여하거나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우려되는 테러 유형이나 위협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요?
대한민국은 다행히도 국제적으로 테러 위험도가 매우 낮은 나라로 평가됩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 테러 지수(GTI) 상에서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테러위험 국가(2022년 기준 93위)”로 분류되며, 이웃 일본(71위)이나 대만(92위)과 함께 “위협이 매우 낮거나 거의 없음” 등급에 속합니다. 실제 데이터를 보아도, 1970년부터 2020년까지 50년간 한국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은 34건에 불과하며, 그로 인한 사망자도 총 9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일본(371건)이나 중국(268건)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수치이고,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최저 수준입니다. 이런 통계만 보면 우리 사회는 상당히 안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테러 안전지대”라는 안일함은 금물입니다. 동아시아 지역 역시 테러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테러 희발국(low incidence country)”에서는 오히려 테러 대비 태세가 느슨해지기 쉽기 때문에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국제 테러조직이나 이념적 극단주의에 직접 노출된 사례는 드물었지만, “외부의 위협이 없으니 안전하다”는 착각이 가장 큰 위험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려되는 테러 유형을 굳이 꼽자면, 글로벌 동향을 고려한 신종 테러 수법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첫째로, CBRNe 테러입니다. 비록 가능성은 낮더라도 화학무기나 생물작용제, 방사능 물질 등을 이용한 테러는 발생 시 치명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신기술을 활용한 테러입니다. 드론을 이용한 테러나 사이버 테러가 대표적이지요. 드론은 작은 무인기로서 탐지와 제지가 어려운데, 최근 해외 분쟁지역 등에서 드론에 폭발물을 실어 공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드론 몇 대만으로도 민간 항공기나 군사시설은 물론, 야외 행사장 등 “소프트 타겟”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했습니다. 사이버 테러의 경우, 국가 주요 기반시설을 마비시키거나 개인정보 유출, 가짜뉴스 전파 등을 통해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료 분야는 전 세계에서 사이버 공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핵심 인프라 분야인데, 병원 전산망이 해킹당하면 환자 치료가 중단되고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2017년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워너크라이(WannaCry) 랜섬웨어 사태나 2021년 아일랜드 보건의료 시스템 해킹 사례처럼, 사이버 공격이 곧바로 의료 공백과 환자 피해로 직결되는 사례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강국인 만큼 사이버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결국 현재 한국에 우려되는 테러는 “없다”기보다는 “보이지 않을 뿐”일 수 있습니다. 낮은 빈도라 해도 일단 발생하면 대혼란을 부를 수 있는 테러를 상정하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 현 시점에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Q 의료진들이 테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며, 현재 국내 교육이나 시스템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요?
테러 대응 의료에는 평소 우리가 접하는 응급의료와는 다른 특수한 역량들이 요구됩니다. 우선 대량사상자 관리 역량입니다. 테러 사건은 동시다발적으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현장 응급의료소” 설치 및 전량적(全量的) 환자 분류(트리아지)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의료진은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우선적으로 살피는 재난 의학적 판단력을 갖춰야 하고, 이 과정에서 현장 응급구조대와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첫째로 “재난 현장 지휘체계(IMS)”와 “의료 대응팀(DMAT)”의 운영 원칙을 숙지하고 훈련하는 것이중요하며, 두 번째로는 CBRNe 대응 역량으로서 화학·생물·방사능 테러는 일반 응급상황과 달리 의료진 자신의 안전 확보와 제독(decontamination)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개인보호장비(PPE) 착용, 제독소 설치 및 운영, 독성작용 증후군(toxidrome) 인지 능력 등이 요구되지요. 예를 들어 사린가스 같은 신경작용제 노출 환자는 신속히 아트로핀 등의 해독제를 투여해야 하고, 2차 오염을 막기 위해 의료진이 보호장비를 갖춰야 합니다.
세 번째는 전술응급의학 및 외상 처치 능력으로서 총기 난사나 폭발 등의 테러 현장에서는 군대에서 쓰는 전술응급처치(Tactical Combat Casualty Care, TCCC)나 이를 민간화한 전술적 응급처치(Tactical Emergency Casualty Care, TECC) 지식이 요구됩니다. 총상·폭발상에 대한 지혈, 기도 확보, 흉부손상 처치는 일반 응급실 상황보다 더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며, 출혈응급처치 기술과 손상통제수술 (Damage Control Surgery) 개념에 익숙해야 합니다.
네번째로는 심리적 대응 역량으로서 테러는 공포를 노린 범죄이기에 현장에서 의료진 자신과 환자의 정신적 충격 관리도 중요합니다. 의료진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혼란 속에서도 냉철하게 대응해야 하고, 사건 이후 환자들에게 “심리적 응급처치(PFA)”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학제 협업 능력으로 테러 대응은 의료 하나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경찰·소방 등 법집행기관과의 공조, 보건당국과의 정보 공유, 나아가 군·환경·교통 부서와의 협력까지 총망라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의료진은 이러한 타기관 협업 구조를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의료 교육이나 시스템은 이런 역량 을 잘 준비시키고 있을까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우선 전문의 양성과정에서 테러 대비 의료 교육은 체계적
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수련의 커리큘럼에일부 재난의학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CTM에 특화된 교육은 미흡합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재난의료 및CBRNe 대응 훈련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편 정부 차원에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국 권역별로 재난의료지원팀(DMAT)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통해 대형재난 발생 시 응급의료기관의 동원 체계를 갖춰두었습니다. 또 국민재난안전 교육 프로그램에 응급처치 및 대피요령 등이 포함되어 일반 국민 대상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의료인 대상 테러 대응 전문교육 과정은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제가 작년 필리핀에서 열린 CBRNe 국제학회에서 “대한민국의 CBRNe 및 대테러의학 교육”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는데, 해외 전문가들이 한국의 사례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시작 단계”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실제로 국내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교육과정에 CTM 정규과목은 없습니다. 다만, 2023년 11월에 저희 센터 주최로 “대한민국 재난의료체계는 CBRNe 및 테러에 안전한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어 보건복지부, 소방청, 경찰청, 국방부 관계자들과 의료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Q
앞선 질문에 중복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서 다룬 CBRNe, 드론, 사이버 테러 같은 신종 위협에 대해, 우리 의료체계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다고 보시는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앞서 일부 말씀드린 대로, CBRNe나 드론, 사이버 테러와 같은 신종 위협에 대한 우리의 의료체계 준비도는 아직 충분치 않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CBRNe 테러 대비 측면입니다. CBRNe, 즉 화학·생물·방사능·핵 및 폭발물 테러는 발생 가능성은 낮더라도 일단 발생하면 보건의료에 막대한 충격파를 줍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도 메르스 사태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감염병 대응 능력은 많이 향상되었지만, 생화학 테러는 자연재난과는 또 다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재 일부 대형 병원에 제독시설과 음압격리병상 등이 갖추어져 있고, 정부 차원에서 화학테러 대비 약품 비축(예: 아트로핀 자동주사기 등)이 이루어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는 일부 거점병원과 군·소방의 특수부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일반 응급실이나 구급대 수준에서의 CBRNe 대응 훈련과 장비 보급은 매우 미흡합니다. 만약 지금 국내에서 대규모 화학테러가 벌어진다면 상당수 의료진이 당황하고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전국 의료기관 차원의 환자 분산 수용 체계도 미흡합니다. CBRNe 테러가 발생하면 수백~수천 명의 환자가 몰릴 수 있는데, 현재로선 각 병원이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재난 의료 자원(인력·병상·장비)의 동원 조정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하고, 병원 간 상호지원 네트워크도 갖춰야 합니다. 물론 정부에서 재난의료비상대응팀을 운영하지만, 체계가 실시간으로 작동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제사회와의 공조 움직임일 겁니다.
둘째, 드론 테러 대응 측면입니다. 드론 공격은 전통적인 폭발물 테러와 유사한 피해양상을 보일 수 있지만, 공중에서 예고 없이 날아든다는 점에서 대응이 더 까다롭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비 상황은 어떨까요? 현재 국방 및 치안 분야에서는 안티-드론 기술 개발과 불법드론 탐지망 구축 등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의료체계 차원에서는 특별한 대비책이랄 것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론 테러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한 의료 대응 시나리오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평소 준비해온 폭발물 테러 대응 시스템(예: 중증외상센터 가동, 응급수술인력 총동원, 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은 드론 테러 때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는 사이버 테러 대응 측면입니다. 사이버 공격은 겉보기에는 의료 “외적”인 문제처럼 보일 수 있으나, 현대 의료체계에서는 환자 생명과 직결된 위험입니다. 전자의무기록(EMR), 생체신호 모니터, 의료기기 등 모든 것이 IT 인프라에 연결되어 있어서, 병원 전산망이 마비되면 응급실과 중환자실 운영이 즉각 차질을 빚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의료기관 해킹 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다행히 아직 대규모 피해는 없었지만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위협입니다. 의료체계의 사이버 테러 대비는 크게 예방적 보안 강화와 침해 발생 시대응 계획으로 나뉩니다. 현재 상당수 대형 병원들이 정보 보안팀을 두고 방화벽 강화, 모의해킹 점검 등을 하고 있고, 정부도 의료정보 보호지침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병원들의 보안 수준은 천차만별이고, 중소 의료기관은 전문인력이 부족해 사이버 대응에 취약합니다. 더욱이 사이버 공격 발생 시 환자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체 수기절차나 백업체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된 곳은 드뭅니다. 따라서 우리도 각 병원마다 사이버 공격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정기적인 모의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의료 사이버 보안을 인프라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고, 의료IT 시스템 업계와 협력하여 해킹 취약점을 줄여야 합니다.
Q 일반 시민과 정부 관계자들이 이 책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주목해서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 저자 입장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 책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의료 전문인뿐 아니라 재난·테러 대응에 관심 있는 모든 분을 독자로 상정하고 썼
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시민과 정부 관계자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부분도 각각 다를 것 같습니다. 우선 일반 시민들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부분, 그리고 다양한 테러 사례 서술 부분을 주목해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책의 서두에서는 제가 왜 이 분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테러에 맞서 우리가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고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어려운 전문용어보다는 재난의학을 전공하게 된 개인적 이야기와 9·11 테러 현장에서 느낀 점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놨기에, 일반 독자분들도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각 장마다 국내외 테러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역사적인 테러 사건들의 경과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스토리텔링 형태로 기술했습니다. 특히 “왜 테러에 대비한 의료가 필요한가”에 대해 막연하게 느끼셨다면, 사례들을 읽고 나면 “이래서 대비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또한 위협 인식 교육 장에서는 시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테러를 대비해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 요령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해외 여행 시 테러 위험 지역 정보 확인하기, 대형 행사장에 갔을 때 비상구 미리 파악하기, 응급처치법 익혀두기 등의 생활 속 안전습관을 제안드리고 있지요. 이런 부분들도 일반 독자분들께 유용할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정부 관계자분들, 특히 정책입안자나 공무원 여러분께는, 각 장의 전문적인 제언들과 맺음말 부분을 유심히 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책에서 의료 관점에서 본 테러 대비 정책에 관한 내용을 각 주제별로 다루었습니다. 이를테면 교육기관 테러 장에서는 학교에 대한 무장공격에 대비한 학교 응급계획 수립과 교직원 응급처치 교육 의무화 같은 정책을 언급했고, 교통수단 테러 장에서는 지하철이나 항공기 테러 시 신속 대피 및 의료구호체계 구축을 제안했습니다.
사이버 테러 장에서는 국가 의료정보망의 사이버 보안 강화 정책 필요성을 강조했고, 하이브리드 전쟁 장에서는 군-민간 의료자원의 통합 대응 매뉴얼 마련을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정부 관계자분들이 해당 분야 정책을 기획하거나 점검할 때 아이디어나 참고자료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소방청, 경찰청, 국방부 등 테러 대응과 연관된 부처의 담당자분들께는 챕터 18 “CBRNe 테러리즘”과 챕터 19 “위협 인식 교육”을 권합니다.
챕터 18에서는 대규모 살상무기 테러에 대비한 국가 의료시스템의 준비 요소들을 다뤘고, 챕터 19에서는 사회 전반의 테러 위협 인식 제고와 교육 시스템 구축에 대해 상세히 논했습니다. 또한 국제기구(WHO, UN 등)의 권고와 해외 선진사례도 책에 많이 인용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정책을 국제 표준과 비교하며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부 관계자분들께 강조하고 싶은 건, 이 책이 단순한 의학 교재가 아니라 “다부처 협력을 촉구하는 교차 분야 지침서”라는 점입니다. 테러 대응은 보건의료만 잘 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법질서 확립만 강하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모든 관련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공감대를 갖고 함께 준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제 책에 담긴 내용이 그런 협력의 밑거름이 되고, 정책 결정자분들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리하자면, 일반 시민들께는 테러의 실상과 대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부분들을, 정부 관계자들께는 정책적 시사점이 담긴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제 욕심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주시면 가장 좋겠습니다만(웃음), 관심 분야별로 골라 봐주셔도 분명 얻는 바가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모든 독자들이 “테러로부터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일은 각자의 역할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가져가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책에서 소개된 실제 국내외 테러 사례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그 사례를 통해 의료적 교훈을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 사례가 떠오르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저는 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를 꼽고 싶습니다. 책에서도 이 사건을 상세히 다루었는데요, 제가 재난의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신문 지면으로만 접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통해 자료를 깊이 들여다보니, 그 현장 상황과 의료 대응에서 정말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사건 당시의 충격적인 장면은, 아침 출근 시간대 지하철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쓰러지고, 눈을 비비며 괴로워하거나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장면입니다. 출근길 평온했던 지하철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역 주변 도로에는 바삐 달려온 구급차와 소방차, 경찰차들이 뒤엉켰습니다. 수백 명의 환자가 역 밖 인도에 주저앉아 있는 사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초기에는 이 상황이 테러인지조차 몰랐다는 점입니다. 원인 미상의 집단 중독 사건으로만 여겨져 혼란이 가중되었고, 의료진도 무엇에 중독되었는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부 의사는 “동공이 축소된 것을 보니 신경작용제 같다”며 아트로핀 투여를 제안했고, 다른 전문가는 “아니다, 환자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니 BZ가스 같은 신경박리제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현장에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의료진 관점에서 이 사례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평소 대비의 중요성”입니다. 도쿄 사린 테러로 13명이 사망하고 5,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이는 현대 테러사에서 유례가 드문 엄청난 피해입니다. 그런데 피해 규모도 규모지만, 피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가 대비 부족에서 온 혼란이었다고 평가됩니다.
환자들 대부분이 스스로 지하철역 근처 병원으로 몰려갔고, 이로 인해 일부 병원에 환자가 집중되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병원들은 갑자기 몰려드는 환자들로 마비되었지요. 더욱이 환자들을 맞던 의료진과 직원들이 독성 물질에 2차 노출되어 연이어 쓰러지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그때만 해도 병원에 제독시설이나 보호장비, 절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쿄 사린 테러는 전 세계 의료계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병원도 화학테러에 대비해야한다”, “의료진 보호 없이는 환자도 못 지킨다”는 깨달음을 준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병원 응급부서에 제독샤워 시설을 갖추고, 미국 등 여러 나라도 독가스 공격 대비 훈련을 도입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 사건을 보고 2000년대 초반에 국가 차원의 화학테러 대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교훈은 “명확한 정보 공유의 중요성”입니다. 사린 사건 당시 초반에 정보가 혼란스러워서 “가스 폭발 사고다”, “지하철에서 화재가 났다” 등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병원들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대응이 늦었고, 환자에게 해독제 투여도 초기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린 중독으로 판명된 뒤에는 치료가 비교적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환자들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테러 현장에서 신속한 상황 전파와 의학적 판단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도쿄 사린 사건 외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사례를 덧붙이자면,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들 수 있습니다. 앞의 사례와는 달리 보스턴 테러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두 개의 폭탄으로 264명이 부상당했지만, 현장에 대기 중이던 응급의료팀과 인근 병원들의 뛰어난 대처로 사망자는 3명에 그쳤습니다. 특히 부상자중 병원 도착 후에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의료 대응이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보스턴 사례를 통해, “철저한 사전 대비와 훈련이 있으면 피해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보스턴 마라톤은 매년 대규모 의료 지원체계(천막 응급실 등)를 운영해왔고, 지역 병원들과 연락망도 잘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테러의학 분야에서 더 보완되어야 할 앞으로의 연구나 정책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대테러의학(CTM)은 국내에서는 이제 첫걸음을 뗀 분야입니다.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빈칸이 상당히 많지요.연구 측면과 정책 측면으로 나누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연구 분야에서의 과제로는, 과학적 근거 마련과 국내 실정에 맞는 지침 개발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 테러 대응과 관련된 의료 지침이나 프로토콜들은 대부분 해외 사례나 군진의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량사상자 분류법, 화학물질 노출 환자 처치법, 폭발물 손상 처치가이드라인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최적화된 형태로 검증된 바는 적습니다.
따라서 국내 연구진이 한국의 시스템과 자원으로 가장 효과적인 테러 의료대응 방법을 찾아내는 연구가 필요합니다.이를 위해서는 다학제 협력연구가 필수입니다.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IT 전문가, 안전공학자, 사회과학자까지 함께 모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뮬레이션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해야 합니다. 현재까지는 국내 CTM 연구가 주로 문헌 고찰이나 해외 사례 분석 위주였는데, 앞으로는 현장 모의실험과 시뮬레이션 기반의 실증적 연구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신종 테러에 대비한 선행연구가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테러가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드론 군집 공격, AI 악용 사이버테러, 신종 바이러스 살포 등 다양한 가상의 위협을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측 연구”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미래의 테러 패턴을 전망하고, 그에 맞는 의료 대비책을 미리 고민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AI 기술을 악용한 사이버공격이 병원 생체장치를 조작한다면 어떤 대응책이 필요할지, 고위험 바이러스를 운반체에 실어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은 얼마나 되고 대비책은 무엇인지 등 지금은 생소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주제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기존 사고 분석도 중요하지만, 정책결정자들은 새로운 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전망적으로 예측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CTM 연구자들 간의 국제 공조와 정보 공유도 필수적입니다. 다행히 세계 재난 및 응급의학회 (WADEM) 등에서 CTM 특별 관심그룹(SIG)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니, 우리 연구자들도 적극 참여하여 지식을 축적해야 합니다.
정책 측면에서는 테러 대비 의료체계의 제도적 뒷받침 강화가 최우선 과제입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법과 제도, 예산 없이는 지속적인 대비를 하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첫 번째로 정기적·표준화된 테러 대비 훈련을 법제화하고, 의료기관 평가 항목에 재난대응 역량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안하며 의대 및 보건계열 대학 커리큘럼에 재난의학/대테러의학 과목을 추가하여 신진 인력 양성 단계부터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독성학, 방사선학, 감염병, 외상외과, 정신건강의학 등 분야별 전문가들을 평시부터 네트워크화하여 “국가 테러의료 자문단” 같은 기구를 두어야 하며, 테러 발생 시 수요가 폭증하는 의약품(예: 항독제, 혈액, 응급수액)과 장비(인공호흡기, 제독제 등)를 국가 비축하고, 필요시 신속히 풀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테러 대응 정책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방부, 소방청, 경찰청 등 여러 부처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 역할이 중요하며, 테러 대응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예산 지원이 필요니다. 이와 함께 필요한 것이 국민 참여와 인식 제고로서 “시민 테러 대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거나, 직장 단위 대피훈련에 테러 상황 시나리오를 가미하는 등 전사회적 인식 향상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가 잠재적 초동대응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와 정책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근거에 기반한 정책(Evidence-based Policy)이 이루어지려면 연구가 뒷받침되고, 또 정책적 필요가 연구를 촉진하는 선순환이 필요합니다. 대테러의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국내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이 참고할 데이터가 적고, 정책 지원이 미흡하니 연구자원도 제한되는 상황입니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부 선제적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합니다.
마무리하자면, 대테러의학 분야의 앞으로의 과제는 “빈틈 메우기”와 “앞을 내다보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부족한 부분들을 연구와 정책으로 채워나가 빈틈없는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미래의 테러 양상을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테러는 인간이 벌이는 행위인 이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위험이며, 따라서 우리 사회도 최악을 가정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효과적인 예방 전략, 최적의 대응 조치, 피해자들의 장기적 영향 관리 등 여전히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이 그 출발점 중 하나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계, 의료계,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하여 한국형 대테러의료 대응모델을 구축하고, 나아가 전 세계의 테러 대응 수준 향상에도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