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은 더 이상 개인의 좌절이 아닌, 국가적 과제입니다. 마리아병원은 36년 전 시작했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단 한 분의 환자라도 더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연구에 매진해 나갈 것입니다." 최근 ‘자가혈 PRP(Platelet Rich Plasma; 자가혈소판풍부혈장)’ 방법으로 시험관아기 착상율을 2배 가까이 끌어올린 마리아병원 허용수 연구부장의 말이다. 허용수 부장은 그동안 대한배아전문가협의회를 비롯해 대한생식의학회 정회원과 유럽 난임학회 그리고 미국난임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Q 먼저 마리아병원과 이번 연구를 성공시킨 연구팀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마리아병원은 1989년 의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오직 '난임 치료'라는 한 길만을 걸어오며 현재 국내·외에 11개 분원을 갖춘 세계적 수준의 난임 전문 의료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저희 마리아병원의 역사는 대한민국 난임 치료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번 '배양 PRP' 연구를 성공으로 이끈 동력은 마리아병원만의 독특한 '연구 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마리아병원의 각 분원에는 배아 배양과 연구를 책임지는 연구부장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개별 분원의 업무에 머물지 않고, 정기적인 협의체 모임을 통해 각자의 임상 경험과 시술 노하우를 가감 없이 공유합니다. 일종의 '상시 학술대회'와 같은 이 네트워크는 마리아병원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연구의 아이디어 역시 이러한 교류의 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최신 학술 트렌드를 공유하던 중, 기존에 자궁 내막 재생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되던 PRP의 강력한 성장인자를 '배아 배양' 자체에 접목해보자는 제안을 제가 하게 되었고, 평촌 마리아 IVF 센터 현창섭 연구부장과 마리아플러스 양성호 연구부장이 실제 임상 성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이는 개별 병원 단위에서는 불가능한, 마리아병원만의 네트워크 시스템이 만들어낸 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Q
자가혈 PRP를 난임 치료 분야에 적용하게 된 계기와 연구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심각한 인구 절벽과 고령화 사회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난임 현장에 있다 보면 이를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지요. 저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유형을 보면 과거에는 30대 초중반 환자가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40대 환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요. 의학적으로 35세 이상을 고령 난임으로 분류하는데, 이 분들은 난소 기능이 저하되어 있어 과배란 유도를 해도 난자 채취 수가 적고, 배아의 질(Quality) 또한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고령 환자와 반복 착상 실패 환자들에게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팀은 '부족한 것을 채워줄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 것이지요. 그때 주목한 것이 바로 'PRP'입니다. 기존에는 PRP를 자궁이나 난소 조직에 직접 주입하는 용도로만 썼지만, 저희는 발상을 전환해본 것입니다. 성장인자가 풍부한 PRP를 배아가 자라는 '배양액'에 직접 첨가하면, 배아의 발달 결함을 보완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지요.
연구 과정은 신중했습니다. 약 200명의 반복 착상 실패 환자군을 대상으로 임상 연구를 설계했습니다. 배양액에 환자 본인의 PRP를 추가한 군(77명)과 기존 방식대로 배양한 군(124명)을 정밀하게 비교 분석한 것이지요. 고난도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만큼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으나, 마리아병원의 숙련된 배양 기술과 철저한 안전 가이드라인 덕분에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Q PRP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인지요?
우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 혈소판은 가장 먼저 상처 부위로 모여 지혈 작용을 하고, 이후 성장인자 등을 분비해 주변 세포들이 치유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PRP 안에는 IGF-1(인슐린 유사 성장인자), EGF(상피
세포 성장인자), TNF(종양괴사인자) 등 세포의 증식과 분화, 생존을 돕는 다양한 단백질과 사이토카인, 케모카인 등이 있습니다. 이미 치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에서는 손상된 인대나 피부 조직을 치유 과정에서 이를 보조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자가혈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 이를 적용할 때, PRP는 배아에게 다양한 성장 신호를 포함한 복합적인 미세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배아는 저마다의 결함이 다를 수 있어요. 어떤 배아는 A라는 성장인자가 부족해 분열이 멈추고, 어떤 배아는 B라는 성분이 없어 착상에 실패하게 되지요.
PRP의 놀라운 점은 그 안에 수많은 종류의 성장인자가 들어있어, 배아가 자신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성분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환자 본인의 혈액에서 추출한 풍부한 '영양 뷔페'를 차려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비록 기초의학적으로 어떤 인자가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전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하지만, 임상적으로 배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만큼은 이번 연구로 명확히 확인된 것입니다.
Q
연구의 핵심 결과인 '임신 성공률 1.8배 상승'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연구 결과, 배양 PRP를 적용한 그룹의 임신율은 33.8%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기존 방식의 대조군은 18.5%에 그쳤습니다. 수치상으로 1.8배의 상승율을 보인 것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1.8배라는 숫자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난임 의료진에게 이 수치는 놀라운 수준이예요. 이번 연구 대상자들은 평균 연령이 높고, 이미 평균 3~4회 이상의 이식 실패를 경험한, 이른바 '최고난도' 환자들인 것이지요. 이런 분들에게는 임신율을 단 1~2% 올리는 것조차 어려운 도전인 것입니다. 그런데 10%대에서 30%대로 성공률을 끌어올렸다는 것은, 배양 PRP가 강력한 잠재력을 가졌음을 시사한 것입니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단순히 임신만 잘 된 것이 아닙니다. 배아의 질 자체가 개선되었고, 배아의 착상률과 임신이 지속되는 비율(Ongoing pregnancy) 모두 유의미하게 향상된 것입니다.
Q
현재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바로 적용이 가능한가요? 도입 현황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마리아병원은 연구 성과를 빠르게 임상에 도입해서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 본원을 비롯해 송파(마리아 플러스), 평촌, 상봉, 수지, 대구, 부산 마리아병원 등 모두 10개 주요 분원에서 배양 PRP 시술을 전격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요.
사실 배양 PRP는 매우 정교한 배양 기술과 설비를 요구합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마리아병원과 차병원 일부 병원의 연구팀 정도가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지요. 저희는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 모든 마리아 분원을 방문하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최첨단 배양 PRP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표준화했습니다. 이미 환자들 사이에서는 '반복 실패로 포기하려 했는데, 내 피를 이용한 배양법으로 임신에 성공했다'는 후기를 커뮤니티를 통해 확인하면 의료진으로서 큰 보람을 느끼게 되지요.



Q 앞서 잠깐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어떤 환자들이 이 시술의 주된 대상이 되며,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요?
현재 가장 우선적으로 권장되는 대상은 '3회 이상 반복 착상 실패'를 겪은 분들입니다. 또한,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배아의 질이 좋지 않은 경우, 혹은 고령으로 인해 매번 배아 발달이 원활하지 않은 분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전문의와의 심도 있는 상담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젊은 환자 중에서도 원인 불명의 배아 결함이 의심되는 경우 상담을 통해 시도해 볼 수 있지만, 각자의 신체 상태와 난임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처방'이 중요합니다. 배양 PRP는 환자 자신의 혈액을 사용하므로 면역 거부 반응이나 부작용 걱정이 거의 없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Q
마리아병원 연구팀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은 어떻게 잡고 계신지요?
저희 연구팀의 지향점은 명확합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과학적인 것이다"라는 믿음이지요. 기존의 체외수정(시험관) 방법은 배아를 아주 정적인 인큐베이터 안에서 키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자연 임신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난자와 정자는 나팔관이라는 역동적인 공간에서 만나고, 배아는 자궁으로 이동하며 끊임없는 유체의 흐름과 모체 세포와의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인공적인 배양 환경은 이 '생명의 흐름'을 완벽히 재현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마리아병원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 왔습니다. 과거의 자가 난구 세포나 난포액을 이용한 연구나 배아에게 진동이나 기울기를 주어 동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연구 등이 모두 그 일환이었습니다. 이번 '배양 PRP' 연구 역시, 모체의 성분을 배양액에 녹여내어 배아에게 엄마의 몸속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다음 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배아가 '체외'에 머무는 시간 동안 낯선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모체 환경을 완벽히 복제하는 연구를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Q
그 때문인지 최근 미혼 여성들 사이에서 '난자 냉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흐름입니다. 그래서 젊고 건강할 때의 난자를 보관하려는 '난자 냉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20대의 난자로 40세에
임신을 시도한다면, 그 아이는 20대 여성의 생물학적 건강함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최근에는 서울시를 비롯해 경기도, 부산 등 여러 지자체에서 난자 냉동 시술비를 지원(최대 200만 원)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어 이전에 비해 문턱이 많이 낮아졌지요. 서울시의 경우 지원 수요가 폭발적이라 예산이 조기 소진될 정도인데, 이는 그만큼 여성들의 인식이 변화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희 마리아병원은 이러한 난자 냉동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얼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중에 해동했을 때 얼마나 높은 생존율과 수정률을 보이느냐가 관건이지요. 저희 연구팀은 최근 '냉동난자 해동 시 생존율 증가를 위한 SVICSI(특수 미세수정법)' 시술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등, 보관된 난자가 실제 건강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난임은 더 이상 개인의 좌절이 아닌, 국가적 과제입니다. 마리아병원은 35년 전 의원에서 시작했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단 한 분의 환자라도 더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연구에 매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 배양 PRP 기술은 그 여정의 소중한 이정표 중 하나일 뿐이지요. 아이를 기다리는 모든 부부에게 '과학'이라는 가장 확실한 위로를 전해드릴 수 있도록, 마리아병원 연구팀은 오늘도 배양실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정리 김성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