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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프리카대륙에 생명존중 K의료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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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마지막 장,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인 동시에 지나온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이웃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인정의 달’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동안 국내는 물론 북한과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며,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해 온 안양샘병원 박상은 미션원장으로부터 그가 그동안 쌓아온 봉사의 역사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는 안양샘병원에서 20여 년간 병원장을 비롯해 대표원장 등을 역임하며, 환자진료 뿐만 아니라 병원발전과 경영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어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토대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런가하면 성산생명윤리연구소를 창립하고, 지난 20년 동안 생명윤리운동을 펼쳐 왔다. 그리고 이 활동과 연관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을 맡아 ‘생명존중선언문’을 제정 공포했고, 연명의료결정법 등 국가생명윤리정책의 큰 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흔히 이웃과의 정을 나누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박상은 원장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많은 봉사활동을 통해 사람들과의 정을 나누어 오신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더라고요. 이렇듯 의사시면서 병원의 경영을 맡고 계신분으로서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그렇게 물으시니 먼저 제 신상에 관해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이미 작고하셨습니다만 제 아버님은 생전에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시던 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평소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강조하시곤 하던 아버님의 그런 기독교적 정신에 저 역시 적지 않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드네요.


그리고 제 어머님이 심장병을 앓으시다 일찍 세상을 떠나셨는데 지금 같으면 충분히 치료를 받으실 수 있었을텐데 그 당시만 해도 의술이 지금만 못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셨던 것이지요. 어머님 살아생전에 어린 제가 어머님 등에 엎여 있으면서 듣던 어머님의 힘들어 하시던 숨소리를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머님의 숨소리가 내게 ‘앞으로 아푼 사람들을 위해 살아 가야 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도 ‘지금은 어머님을 도와 드리지는 못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른 아푼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런 어릴 적 생각이 후에 의과대학으로의 진학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이렇게 고신의대로 진학해 졸업을 한 후 당시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장기려 박사님이 운영하시던 부산복음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 부산복음병원은 당시 200병상 정도의 작은 병원이기는 했지만 저는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이 병원을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오래 전부터 장기려 박사님을 존경해 왔고, 그 분을 가까이서 뵐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실제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친 몇 년 동안 장기려 박사님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었으며, 동시에 평생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는데 너무도 중요한 계기가 되어 주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계시듯이 의학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봉사 분야의 활동에서도 정말 탁월하신 분이셨습니다.


우선 의사의 한 사람으로 환자를 전인적으로, 환자의 육신 뿐만 아니라 마음과 환자의 주변까지도 아우르는, 그런 의사였습니다. 이런 장 박사님의 모습이 제게 롤 모델이 되어 주신 것이지요. 봉사와 희생의 정신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장박사님의 모습을 대하면서 내 나름대로 ‘생명사랑의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후 생명 윤리를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게 했고, 지금까지도 이 분야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의료를 통한 봉사활동을 벌이게 된 계기 역시 수련과정에서 지켜 본 장기려 박사님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전공의 수련을 받은 몇 년 동안 장 박사님의 곁에서 그 분의 삶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가 의사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환자를 병든육신 뿐만 아니라 마음, 나아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부분까지 아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한마디로 전인적인 의료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앞서 잠시 언급 했습니다만 생명사랑, 이 때문에 저는 생명윤리를공부했고, 이후 이 방향의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정말 좋은 것만을 생각하고, 좋은 것만을 보면서 장기려 박사님 곁에서 수련과정을 거쳤고, 외국 에서의 공부까지 마친후 안양샘병원에 들어와 오랜기간 동안 내나름대로 생각해 왔던 의료봉사를 국내 뿐 아니라 북한, 그리고 이어서 아프리카까지  활동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저의 삶의 모습이 장기려 박사님이 제게 보여 주셨던 그 삶의 모습으로부터 배운 결과라는 점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안양샘병원에서 20여 년을 몸담아 오셨는데 처음 이 병원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안양샘병원은 이상택 회장님 부부가 1967년에 설립한 병원인데 제가 이 병원에 몸담게 된 것은 고신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이 회장님 부부의 아들로서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혈액종양을 전공한 이대희 박사와 봉사활동을 함께 하며 아주 가깝게 지내던 중 내게 자신의 부모님이 설립한 병원에 와서 박애와 봉사의 정신을 갖고 섬겨 줄 수 없겠느냐는 제의를 해서 이에 응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이 병원에 몸담게 되었는데 그 세월이 어언 20년이나 되었네요. 제가 이 병원에 몸담고 있는 동안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이상택 회장님을 비롯한 주위의 분들이 모든 뒷받침을 해 주었다는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이런 저에게 병원장의 막중한 자리를 내 주셨지요. 그만큼 저를 믿고 일을 맡겨 주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믿음을 가져 주었다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또 어디에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제가 이 병원에서 받은 은혜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벌일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회장님 부부의 지원이 있어 시작이 되었고, 아프리카미래재단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을 벌이셨고, 아프리카 미래재단을 설립하셨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씀드린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에 들어가기앞서 대북의료지원 사업에 대해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이 대북의료지원 사업을 위해 저는1998년부터 2007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북한을방문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의 의사들을 교
육하여 혈액투석이 가능하도록 하여 실제 시술을 집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꽤 큰 병원인데도 혈액투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더라고요.  이런 일 때문인지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의학부대외부총장 일을 맡아 나름 통일의료를 준비하기도 했었지요. 이렇듯 대북의료지원 사업에 전념하던 중 남북간에 갈등이 빚어져 이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지요.  그래서 아프리카 의료봉사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해외봉사활동을 위해 안양샘병원은 ‘샘글로벌봉사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이 단체를 근간으로 하여 수 십 차례의 해외봉사를 다녀 왔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봉사여행을 50회까지 카운트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그만 두기도 했지요.  


무엇보다도 2007년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 아프리카미래재단을 설립해 스와질랜드 의과대학 설립 협력을 시작으로 말라위 대양누가병원 지원 및 간호대학 설립과 운영, 모자보건사업 및 에이즈예방사업, 잠비아 치소모병원 협력사업 및 의료기기지원센터 건립, 그리고 짐바브웨 국립병원 심장수술센터 세팅 및 재활치료사 역량강화사업, 탄자니아 클리닉 운영 및 지역사회개발사업, 에티오피아 명성병원 및 명성의과대학과의 협력사업, 마다가스카르 병리학 연수 및 이동외과진료지원 등과 같은 아프리카 16개국에서 각종 보건의료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말라리아퇴치연대를 창립해 이 단체 대표를 맡아 운영하기도 했지요. 특히 이 아프리카 의료봉사활동은 단순히 약품을 처방하고 일회성 진료를 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지 의료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방문해 의료교육 및 기술전수를 시도하였으며, 현지 의료인들을 수 십 차례한국으로 초청하여 우리의 우수한 기술을 익혀 스스로 의료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 점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외국인근로자와 소외계층 환자들을 위한 무료진료도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런 제가 했던 일들이 정부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겨주었음인지 2005년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2014년에는 경기도지사 표창 그리고 2015년에는 국민포장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마치 내 자랑을 늘어 놓은 것같이 되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모든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택 회장님 부부를 비롯해 안양샘병원의 헌신적인 지원과 격려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원장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북한이나 아프리카에서 의료를 통한 봉사활동에 어느 만큼 많이 노력을 하셨는지 느낌이 오네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박상은 원장님 하면, 물론 봉사활동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생명윤리운동에 대한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성산 장기려 박사님의 생명존중 사상과 윤리적 의료의 영향을 받아 생명윤리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을 했죠. 그래서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생명윤리센터 교환연구원으로 가서 연수를 받고 귀국하여 1997년 ‘성산생명윤리연구소’를 창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활동을 하며 생명윤리단기연수과정을 연간 두 차례 운영을 하며 생명윤리상담사 1백 여명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생명윤리운동 확산을 위해 ‘생명’지를 출간해 보급했으며, 1998년부터 지금까지 20회의 세미나와 생명윤리 포럼을 개최하여 생명윤리 관련 법 제정 및 개정 모니터링을 해 오면서 법안 제출, ’생명의 날‘ 지정 캠페인을 비롯해 생명사랑 및 자살예방 강연 등을 주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코로나19 사태인데 원장님의 그동안의 활동을 감안할 때 코로나 사태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활동을벌여 왔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는 사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그야말로 선진국들까지도 예외없이 엄청난 피해를 주는 큰 재앙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선진국들까지 제대로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황이니 의료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들의 참상은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코로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지난 2020년 4월 당시 3억여 원을 모금하여 가장 먼저 아프리카 짐바브웨, 말라위, 에스와티니, 탄자니아, 르완다, 나이지리아, 우간다, 잠비아, 남아공, 마다가스카르, 남수단 등 11개국 의료진들에게 개인보호구를 공급했지요. 또 그 해 6월부터 르완다와 잠비아, 남아공, 시아라리온, 부룬디, 부루키나파소 등 6개국에 긴급 생계를 위한 식량과 함께 마스크를 지원했고, 특히 마다가스카르에는 코로나 환자 응급수송을 위해 앰브란스 10대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짐바브웨에 산소발생기와 진단키트를 제공했으며, K-방역 매뉴얼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아프리카 15개국에 보내 국가방역에 참고하도록 했지요.


안양샘병원에 몸담아 오시는 동안 병원장과 의료원장 그리고 대표원장을 역임하셨고, 지금은 미션원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계신데 이 미션원장이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아마도 다른 병원들에선 흔히 들어 본 직책은 아닐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제가 병원장과 의료원장, 대표원장을 모두 마치고, 앞서 말씀드렸던 이상택 회장님의 아드님인 이대희 박사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는데 병원경영은 이 분이 직접 하시면 되니까 제게는 안양샘병원의 가치, 그러니까 병원의 설립이념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맡아 주었으면 한다면서 ‘미션원장’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제게 주시더라고요.


다른 병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직책이겠습니다만 저는 이 직책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안양샘병원과 함께 제가 그동안 추구해 왔고, 또 앞으로 계속해서 추구해 나갈 일들을 함축하는, 그런 직책이라는 생각을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제가 총괄책임을 맡아 지금 아랍에미레이트에 여성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병원에 새로운 생활습관의학을 도입해서 운영을 한다든지, 전인교육훈련을 실시하고 또 의료봉사팀을 구성하여 여러 지역에 파견해 활동하는 등의 과제들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저희 안양샘병원 직원 20여 명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데 이 분들과 긴밀히 연락을 하며 후원하는 일 등이 바로 미션원장인 저에게 맡겨진 일인 것이지요.  이 미션원장을 맡아 일을 하다보니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저는 나름대로 매우 바뿐 나날을 보내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저희 안양샘병원은 진료, 연구, 교육 이외에 사회공헌이나 생명사랑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능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다른 병원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아버님이 목사이셨기에 그동안 원장님이 하신 여러 활동 역시 기독교적 정신이 그 근간에 깔려 있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위에서 하는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동안 봉사활동 이외에도 병원에 크고 작은 일들과 관련한 일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몇 가지 소개해 주시지요.
자꾸 제 자랑만 하는 것 같이 부끄럽네요. 다만 그동안 해 왔던 여러 활동이 제 개인적으로 이룬것이 아니라 안양샘병원 이상택 회장님 부부와 그분들의 아드님인 이대희 이사장님의 헌신적인 지원 덕분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조금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사건들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건들로서 먼저 2007년 9월 아프칸에서 탈레
반에 피납되었다가 풀려난 21명의 귀환자들을 저희 병원으로 모시고 와서 입원치료와 함께 이후 1년 간에 걸쳐 상담치료를 시행했고, 2014년 2월에는 이집트 버스 폭탄테러로 피해를 당한 환자 26명에 대해서도 진료와 함께 심리상담을 시행했으며, 2013텬 11월 태풍 ‘하이렌’으로 큰 피해를 본 필리핀에 응급의료 인력을 파견한 것을 비롯해 아이티 지진사태와 네팔 지진사태 등 긴급재난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해 어려운 사람들을 진료했습니다.


그런가하면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인 진도실내체육관에 의료진을 파견하였으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해 직접 주치의를 맡아 입원진료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유가족 분들이 저희 병원에 많이 오셔서 치료를 받으신 적이 있지요.


물론 저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과 병원 임직원들 모두가 그 분들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조금이라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말 친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돌보아 드렸습니다. 이런 진실된 ‘이웃 사랑’의 마음이 저희 안양샘병원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