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지난주부터 전국 곳곳에 첫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보다 일주일 빠른 기록이다. 폭염은 하루 최고기온이 33℃ 이상인 경우를 뜻하는데, 이러한 날씨가 2일 이상 지속될 경우 폭염주의보를 최고기온이 35℃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면 불쾌감이나 권태감, 집중력 저하 등의 가벼운 증상은 누구나 겪는다. 문제는 증상이 심한 경우 현기증, 메스꺼움, 근육경련 등을 비롯한 열실신이나 의식변화의 증상을 겪을 때다. 이러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통풍이 잘되는 그늘이나 에어컨이 작동되는 안전한 실내로 이동하고, 의식이 명료하거나 물음에 잘 대답할 정도의 상태라고 한다면 차가운 물을 마시고, 입은 옷은 벗은 후 피부에는 물을 뿌리면서 부채나 선풍기 등으로 몸을 식히는 게 중요하다. 휴식 후에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 김 덕호 교수
반드시 의료기관에 방문하여 진료를 받아야 하며 경련이나 실신, 의식 저하 등의 증상이 발생하면 바로 119에 신고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즉시 시원한 장소로 이동해 옷을 벗기고 몸을 식혀주어야 한다.
이처럼 여름은 모두가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지만 문제는 폭염은 건강한 성인도 지치게 할 뿐만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노인 사망자가 대다수인 만큼 어르신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노원을지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김덕호 교수는 “젊은 사람들은 열경련, 열실신, 열탈진과 같은 생명의 위독함이 낮은 질환에 더 잘 이환되나 노인에서는 신체온도 40도 이상과 신경학적 증상을 동반한 열사병에 더 많이 이환되는 것으로 보고된다”며 “실제로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을 분석한 결과 사망자 중 65세 이상의 비중이 높고, 대다수가 실외에서 발생하며 작업장과 논밭에서 일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햇볕이 가장 강한 낮 시간대(11:00~17:00)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열탈진보다 더 위험한 열사병, 의식장애, 경련과 함께 나타나
더위로 인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온열 질환으로는 열탈진과 열사병이 있다. 두 단어를 자칫 혼동하기 쉬운데 열탈진은 고온에 노출돼 신체 온도가 37~40도 사이로 상승되면서 탈수현상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 흔히 ‘더위먹었다’는 말이 열탈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일사병으로 통용되어 왔지만 WHO에서 발표한 국제 질병분류코드에서는 열탈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박동이 빨라지고 어지럼증, 두통, 구역감 등의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그늘진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열사병은 열탈진보다 더 위험하고 증상이 심각하다. 과도한 고온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공간, 운동공간 등에서 열 발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체온 상태가 유지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40도 이상의 고열과 의식장애, 중추신경계 이상, 경련 등이 나타난다.
이외에도 △땀샘의 염증으로 인한 열 발진(땀띠), 발과 발목의 부종이 생기지만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는 열 부종 △말초혈관 확장과 혈관 운동의 톤이 감소하여 나타나는 체위성 저혈압에 의해 실신이 발생하는 열 실신 △땀으로 과도한 염분 소실이 생겨 근육의 경련이 발생하는 열 경련 △불충분한 수분 섭취 및 염분의 소실로 인해 두통 등 다양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인해 열 발산 능력 낮아
노인층이 특히 폭염에 취약한 이유는 노화로 인해 동반 질환이 발생하고, 다수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반 질환들은 폭염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에 교란 효과를 일으킨다. 노화에 따라 신체 조성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데 대표적으로 총체액량의 변화다. 쉽게 말해 노인은 젊은 성인에 비해 총체액량이 감소되어 고온에 노출될 경우 탈수와 전해질 이상에 빠지기 쉽다.
뿐만 아니라 심장의 기능은 저하되고 이에 따라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열을 쉽게 발산하기 어려워진다. 피부와 점막은 피하 혈류의 감소와 탄력성이 저하돼 당뇨 혹은 말초혈관성 질환을 지닌 노인들은 내부의 열을 발산하기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노인들이 열탈진과 열사병에 빠지기 쉽고, 폭염에 취약한 이유다. 정신적으로 인지능력도 저하돼 더위에 노출 시 자연스럽게 얇은 옷으로 갈아입거나 열 발산이 용이한 옷으로 쉽게 갈아입어야 한다는 인지가 늦어지기도 한다. 행동으로 쉽게 이어지지 못하게 되면서 시원한 곳에서 열을 식혀야 한다는 필요성도 늦게 인지하게 된다.
평소 복용 중인 약 효과로 갈증 못 느껴
노인은 갈증이 나더라도 갈증을 잘 못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로 전달된 신호를 조절하는 신경계의 기능, 적절한 호르몬 생성의의 저하 등으로 갈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몸의 수분이 감소한 탈수 상태가 되면 항이뇨호르몬 분비를 통해 신장을 통한 수분 배출을 감소하도록 작동한다. 탈수로 인한 전해질의 불균형은 알도스테론 호르몬 분비로 신체의 물과 소금을 보존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증가된 항이뇨호르몬과 알도스테론 호르몬을 감지하여 갈증을 느끼도록 뇌로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나 당뇨병, 심장질환, 신장 질환 등 동반 질환 등은 이러한 메커니즘 방해를 일으킬 수 있으며, 다수의 약 복용으로 인해 갈증을 덜 느끼게 된다.
노원을지대병원 응급의학과 김덕호 교수는 “폭염은 노인에게 단순히 열탈진,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에 노출되는 것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외부 활동 저하로 근 손실 후 거동 장애를 호소하거나, 식욕부진으로 섭취 저하, 전해질 이상 소견과 영양결핍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며 “평소 복용하던 약을 먹지 못하여 만성질환의 급성기 이완으로 응급실 진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치매의 급성 진행과 같은 이차적 영향을 보이는 것이 노인의 특성임을 인지하고, 당사자를 비롯한 보호자들 역시 폭염에 대한 적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