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맑고 밝은 기운을 듬뿍 받으시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 아래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제중원 130주년이던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전, 잠시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중원 130주년을 비롯해 치의학 100주년, 인턴 101주년, 본관 개원 10주년, 로봇수술 10주년 등 뜻 깊은 기념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연세암병원의 개원 첫 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브란스의 명성이 국내외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입원 수술을 받았을 때 전 세계가 세브란스를 주목했습니다. 탁월한 의료진의 실력과 정성으로 성공적으로 치료함으로써 최고 병원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명하였습니다.
메르스 사태 때 세브란스는 JCI를 통해 갖춘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최적의 대응을 함으로써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임을 대내외에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세브란스는 국가고객만족도조사(NCSI)에서 5년 연속 1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고, 환자와 가족 중심의 병원을 위해 우리 라운지, 어린이병원 라운지 그리고 본관 리모델링 공사도 착공했습니다.
칭다오세브란스병원과 칭다오연세국제치과병원 설립도 구체화되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는 교수연구동을 착공하는 등 연구 및 공간 인프라를 강화했습니다.
제중원 131주년인 올해를 제중원 150주년을 준비하는 원년(元年)으로 삼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50주년은 앞으로 20년만 기다리면 다가올 물리적 시간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세브란스의 가치를 세상에 입증하는 150주년입니다.
저는 그 요체가 바로 ‘Severance Way’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의료기관은 무척 많습니다. 평가기준으로 병상수, 외래-수술 환자수, 매출액과 같은 지표가 사용됩니다. 그러다보니 마치 병상과 환자가 많고, 매출액이 큰 의료기관이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중원 150주년에도 이런 지표가 남아 있기는 하겠지만 의료기관 가치 평가의 기준은 아닐 것입니다.
그 대신 ‘인류에 대한 공헌’이 의료기관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즉,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얼마나 해냈는가를 평가 할 것입니다. 새로운 치료법과 진단, 신약, 신 의료장비를 개발해 중증, 난치병 극복에 기여했는가를 평가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봅시다. 인류의 의료 역사를 진일보시킨 업적이라고 자부할 만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제가 틈날 때마다 ‘Beyond Hospital 의료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Beyond는 단순히 뛰어 넘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전에 없었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연구와 진료, 교육, 환자와 가족에 대한 배려와 안전, 감염예방, 재난 대응 등 우리가 중점을 두고 있는 모든 분야에 다 해당됩니다.
지금까지 한국 의료는 선진국을 따라잡는 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장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좋은 의료기관이라고 할 곳은 있으나, 독특한 업적은 없다고 말을 받습니다. 세브란스도 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중원 150주년을 향해 출발하는 원년인 올해,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인류를 위한 업적을 내는 의료기관으로 도약하는 발걸음을 내딛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이미 130년 전에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제중원 초기 알렌의 기록을 보면, 말라리아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의학이나 민간요법밖에 없던 조선에는 학질(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학질은 난치병이자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의학을 공부하고 키니네를 알고 있던 알렌에게는 치료 가능한 전염병의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제중원은 조금 더 나은 의료기관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의 의료이자 미래의 의료였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제중원은 Beyond Hospital 의료문화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20년 안에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의료의 미래를 제시해야 합니다. 1885년 이전에는 없던 것을 제중원이 보여주었듯이 150주년인 2035년에 세브란스는 세계의 제중원으로 거듭 나야 합니다.
올해부터 이 일을 본격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연구 역량 강화입니다.
“Severance Way”는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신 치료법, 기술 개발의 핵심은 연구에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 최고의 특허 출원 건수를 기록하는 한편, 연구비 수주액도 1000억 원을 돌파하며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제조업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여러분도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 주된 원인 중의 하나가 세계를 선도할 핵심 기술의 부재라는 분석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한국의 제조업은 Fast follower였을 뿐, First mover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금 이래로 가면 의료도 제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Fast follower에 머물러서는 선발 주자를 따라잡기는커녕, 후발주자들에게 추월을 당합니다.
둘째, 사고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의-치대, 간호대, 보건대학원, 병원, 치과병원 등 의료산업에서 필수적인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와 진료에 적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경우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은 물론 외국과도 적극 손을 잡아야 합니다. 재정, 인력, 기술 등을 융합하고 주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추진 중인 Biomedical complex, 제중원 힐링센터와 의대 기숙사 건립 등에서도 이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셋째,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Beyond Hospital 의료문화는 미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의대 학생들에게 ‘의사가 된 뒤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물어봅니다.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만 가진 사람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병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세브란스의 꿈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남들이 해내지 못한 새로운 치료법, 신약, 신 의료장비 개발, 환자와 가족에 대한 서비스를 창조해 인류에 공헌하는 것입니다.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은 제2의 세브란스로서 세브란스의 설립 이념인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는 중심이 될 것입니다. 또한 Beyond Hospital 의료문화의 창조의 기지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연세와 세브란스 브랜드 세계화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칭다오세브란스병원과 칭다오연세국제치과병원은 한중 의료 파트너십을 상징하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손잡고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사랑받는 병원을 만드는 한편, 연구를 통해 새 치료법 개발과 연구를 선도해 나갈 것입니다.
올 한해도 의료 환경은 녹록치 않을 전망입니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 우려에 더해 정치 사회적인 변화는 더 격심해질 것이며, 법적 제도적인 난제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의료기관들은 지난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비교적 좋은 경영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 현상일 뿐 머지않아 구조적인 불황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130년 동안 힘든 고비를 수업이 넘기고 성장 발전해온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파도가 몰아쳐도 잘 헤쳐나가리라 굳게 믿습니다.
올해 신년하례는 광혜원(제중원) 뜰에서 진행됩니다. 우리가 알렌, 에비슨, 세브란스를 기억하면서 세브란스 의료의 대로를 열어가는 굳건한 마음을 서로 다지고자 함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자세를 가져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나중에 즐긴다는 뜻으로 위정자의 바람직한 자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만, 지금 시대에는 모든 리더가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우리는 Beyond Hospital 의료문화 창조의 주역이자, 리더입니다. Beyond Hospital 의료문화 창조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며, 눈부실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에베소서 6장 6~7절은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감당합시다. 각자 맡은 업무에서 “Severance Way”를 만들고, 이것이 세계의 표준이자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고 애쓰는 한 해를 만듭시다.
감사합니다.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정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