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병원에도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만성질환의 잦은 발병과 노인병 증상을 보이는 고령 환자의 증가 현상이다.
그동안 병원은 전염병 및 급성기 치료에 적합한 시설이었지만 최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모든 병원에서 ‘노인케어’에 대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Korea Healthcare Congress 2019에서 제기됐다. 도쿄도립건강장수 의료센터 및 연구소 이사장 히데키 이토는 일본의 경험을 중심으로 ‘초고령 사회에서 병원의 역할과 전망’에 관해 발표하며 노인을 위한 지역포괄케어를 강조했다.
“급성기 병원도 노인케어 대비해야”
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노인을 위한 통합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 따르면 노인들은 거주하는 곳에서 케어서비스를 받는다.
히데키 이토 이사장은 “고령 환자 치료는 병원보다 자택치료가 더 좋다. 그러기에 일본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가 75세가 되는 2025년까지 ‘노인을 위한 통합 커뮤니티케어 서비스’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통합커뮤니티케어 시스템에 도입으로, 자택에서 거주하는 일본 노인들은 의료, 장기케어, 생명 유지, 주거 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를 30분 내로 제공받게 된다.
한편,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포괄케어를 도입하여 지자체 특성에 맞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노인 돌봄을 책임지고 있다. 히데키 이토 이사장은 “일본병원의 특징은 80% 가량이 민간병원으로, 지역포괄케어 도입 이전까지는 주변 병원이 곧 경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 안에서 각 병원이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연계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병원은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모든 서비스를 한 병원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 병원이 담당 역할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좋은 협력관계를 통해 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다직종팀이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직종팀이란 환자 건강관리를 위해 의사, 간호사, 약사, 영양사, 재활관계자 등 9가지 다양한 직종으로 구성된 팀이 환자에게 복합 요소적인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다직종팀과 연계한 클리닉이 자주 이용된다.
노인의 경우 신체적 문제뿐만 아니라 인지기능 문제,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면 질환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일본에서는 지역포괄케어와 다직종팀이 연계하여 퇴원 후 환자의 생활까지 지원한다.
히데키 이토 이사장은 “고령자를 위한 통합 커뮤니티케어는 의료시설 및 장기케어 시설, 지방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좋은 협력을 위해서는 커뮤니티 내 의료진 및 간병인, 시민들의 노인의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같은 주제로 발제를 진행한 이소구 키미노모리기념병원 이사장은 모든 병원이 만성질환관리, 요양형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5년이 되면 일본은 국민 3명중 1명이 노인으로,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의 의료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까지 일본 인구구조는 5명중 1명이 노인으로, 20-64세의 생산가능인구 5명이 65세의 이상 노령인구 1명을 부양하는 구조였다.
급속한 노령화는 의료인력 부족, 의료질 저하의 문제를 낳는다. 이소구 이사장에 따르면 최근 10-20년간 의사 수가 늘어난 의료기관은 대형병원뿐이었다. 중소규모 병원, 특히 지방병원에서는 의사, 간호사 인력 확보가 더 열악하다. 또한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병상 당 간호사 수가 압도적으로 적다. 소수의 의료인력이 다수의 환자를 돌봐야하는 상황에서는 밀도 높은 의료가 제공되기 어렵고, 의료 질이 자동으로 낮아지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이소구 이사장은 지적했다.
히데키 이토 이사장도 이에 덧붙여 “초고령화 시대에는 특히 중소병원이 회복기, 클리닉 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병원 대부분에서 입원 환자 비중이 노인으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초고령 사회에서는 재활, 요양병원에서만 노인 맞춤형 체계 도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급성기 병원에서도 노인케어를 대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커뮤니티케어, 의료전달체계·지역사회 재건 선행돼야"
한편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자의 증가 현상은 우리나라 역시 심각하다. 우리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지역사회 중심 복지구현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추진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같은 날 진행된 KHC 2019 패널토의에서도 ‘고령화와 병원’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특히 한국 현실에 맞는 커뮤니티케어의 실천 방향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한국 병원의 오늘과 내일을 말한다’를 주제로 한 토의에서 한국은 커뮤니티케어 시행에 앞서 ‘커뮤니티의 회복’,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먼저 개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에서 고대안암병원 박종훈 병원장은 국내 커뮤니티케어는 일본처럼 잘 관리되어 정착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그 이유는 “우리나라는 의료전달체계가 다 뚫려있고, 지역중심의료가 무너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일본은 의료시스템 자체가 지역단위에서 커뮤니티케어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커뮤니티케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회복, 전달체계의 회복이 먼저 돼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역 커뮤니티케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상규 교수는 “연구팀과 ‘OECD 국가에서 고령화에 따른 병원 내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연구 중 발견한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OECD 가입 국가에서 급성기 병원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이 교수는 외국에서는 과거 급성기병원이 하던 역할을 지역사회가 대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규 교수는 “지역사회 커뮤니티케어는 환자가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지역에서 케어를 받기에 환자 삶의 질 제고, 의료비 절감에 효과적이다. 따라서 환자도 편하고 정부도 바라는 커뮤니티케어는 고령화에 발맞춘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지역으로 돌아오는 환자를 받아줄 커뮤니티가 부재하기 때문에 급성기병원이 최근 주춤하는 추세이면서도, 급격한 감소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사회가 상당 부분 붕괴된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공동체의 개념부터 정리돼야 정책을 바르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진식 세종병원 병원장은 정책 시행 전 인구수도 중요한 고려대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커뮤니티케어는 사실상 인구 6~10만 사이의 소도시에서 이뤄진다. 또한 일본에서도 원활한 커뮤니티케어는 사실상 급성기, 회복기, 재가지원까지 같이 하는 시설에서나 가능하다고 박 원장은 말했다.
또한 젊은 인구의 부족, 저출산도 커뮤니티케어를 시행하기 전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꼽았다. 박진식 병원장은 “일본 커뮤니티케어의 지지층은 젊은이다. 대부분 그룹홈에서 젊은이들이 노인을 부양하는데, 10년 후 우리나라는 노인들을 지지할 만한 젊은 인구가 뒷받침될까에는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냥 일본모델을 벤치마킹하는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저출산을 고려해 제도 적용을 소도시로 한정하거나, 대도시 케어는 다른 방향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글은 클리닉저널 129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