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소아청소년 우울증은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했으나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아동청소년 (7-18세) 중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수는 5만3070명으로 2018년(3만190명) 대비 75.8%가량 증가하였다고 한다. 2022년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도 소아청소년 우울장애 평생유병률이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유 재현 교수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효과를 우려하여 자신의 상태를 축소보고 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는 상당한 수의 아동 청소년들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아청소년기에 우울증이 발생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한 연구에서는 어린 시기에 우울증이 발생하는 데 미치는 유전의 영향을 약 40% 정도로 추산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이 발생하기 쉬운 기질적 취약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환경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대표적인 스트레스 요인은 어린시절의 학대, 방임, 트라우마와 같이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경험을 들 수 있다. 또한 과도한 학업, 부정적 친구관계, 신체 질환, 경제적 문제 등이 지속되는 경험들도 상당한 고통을 일으킨다. 코로나 19 대유행과 같은 사회적 단절과 고립이 초래되는 상태, SNS 사용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도 최근 들어 우울감에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진 중요한 요인이다. 이 같은 스트레스 요인들은 유전적 요인과 함께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와 작용을 항진 시키고, 외부자극을 인식, 평가, 조절하는 뇌의 기능과 구조에도 영향을 주어 궁극적으로는 정서 조절의 문제를 초래한다. 정서 조절의 문제는 아이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상당한 고통으로 작용한다. 정서조절의 어려움은 울거나, 화내거나, 짜증내는 등의 큰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 아이들은 소위 ‘감정적인 사람’ 으로 인식되곤 한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서는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렵기에 정서 표현을 참도록 요구하거나, 비난하거나, 나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주변의 기대와 압력에 맞추어 아이들은 ‘감정 반응’은 나쁘고 참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이내 실패하곤 한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나타나는 것이 학교 거부, 자해 자살관련 행동, 신체화 (신체적 통증으로 정서를 표현) 등이다. 술, 담배, 마약 등 중독물질에 빠지는 기전 역시 이러한 정서 조절의 문제가 선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동 문제까지 진행된 아이들은 결국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이 때는 이미 우울증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오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우울증의 경우, 약물치료와 적극적 인지행동치료를 동반하여도 50~60% 정도만이 증상의 관해 (증상이 우울장애 진단기준 이하로 줄어듦.)를 보인다. 또한 아동청소년기 우울증을 경험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장애를 경험하는 위험도가 2.78배 증가되고, 성인기 불안장애가 발생하는 위험도 높다고 한다. 따라서 우울증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말과 행동에서 우울증의 신호가 잘 표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명확하지 않은 신호도 많이 있다. 평소보다 짜증이 늘어나거나, 수면 시간이 현저히 늦어지거나, 학교에 가고 싶지 않거나, 머리, 배, 다리 등 신체부위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자주 호소하는 등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공부에 집중이 어렵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 쉽게 피로해하고 사소한 결정도 내리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신호가 시작될 때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서 물어봐 주는 것은 도움이 된다. 부모가 관찰한 사실 그대로와 함께, “요즘 네가 잠을 잘 못 드는 거 같고, 학교 가는 것도 힘들어하니, 걱정이 된다.” 처럼 걱정되는 마음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부모님들 역시 청소년 시절이 있었기에, 아이들의 걱정이 무엇인지 이해되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알수 있다. 또 어떤 일들은 지나고 나면 그렇게 힘들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때로는 부모님 입장에서 “친구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친구를 사귀어 보거나, 너무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와 같은 해결책을 제안해 보기도 했을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이 잘 먹히기 위해서는 그 전에 꼭 거쳐야 할 중요한 단계가 있다. 먼저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정서적 고통이 힘들다는 것, 어떤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 그 자체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정서적 고통에 대해서 수용과 인정이 주어질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 부모님 – 의 지지를 느끼며, 잠시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편안한 관계의 형성은 이후 부모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인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단계는 문제에 대해서 아이 스스로 신중하게 여러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보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결책의 장단점을 충분히 고민해보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 능력이 늘어난다. 너무 치우친 선택에 대해서는 걱정을 표현하며, 제한을 둘 필요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도와 실패를 통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많이 힘겨워 하는 아이라면, 회복과 성장을 돕는 정신건강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기회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가까운 병의원을 찾아 상담을 받기를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