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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연수강좌

“전방십자인대 파열 이후 기능적 감당 여부 따라 수술 결정

MRI ‘완전 파열’이 곧 수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파열후 2~3주 지나 통증 사라진 것은 급성 염증 반응이 가라앉았을뿐, 자연 치유 아니다
건국대병원 이동원 스포츠 수술/통증 클리닉장

전방십자인대 완전 파열 진단을 받고도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던 ‘스키 여제’ 린지 본. 그러나 그의 마지막 도전은 출발 13초 만에 넘어지며 끝났다. 헬기로 긴급 이송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관중석은 침묵에 잠겼다.

 

의료 현장에서 바라보면,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전방십자인대 파열 이후 치료 전략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한다. 건국대병원 이동원 스포츠 수술/통증 클리닉장은 “이번 사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라며 “전방십자인대 파열 이후 비수술적 복귀가 가능한지는 결심으로 정해지지 않고, 그 무릎이 실제로 기능적으로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고 전했다.

 

 

건국대병원 이동원 스포츠 수술/통증 클리닉장

 

전방십자인대 파열, 여전히 ‘파열되면 수술’이라는 공식이 작동하는 이유

전방십자인대는 허벅지 뼈(대퇴골)와 정강이 뼈(경골)를 연결하며, 무릎이 앞뒤로 어긋나지 않도록 잡아주는 핵심 안정 구조물이다. 이 인대가 끊어지면 부상 직후 극심한 통증과 부종이 나타나지만, 놀랍게도 2~3주만 지나면 통증과 부기가 상당 부분 가라앉는다. 이때 많은 환자들이 "어? 생각보다 안 아프네? 자연 치유된 건가?"라고 착각한다.

 

통증이 사라진 것은 급성 염증 반응이 가라앉은 것뿐이고, 무릎의 구조적 불안정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평소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주변 근육이 임시로 무릎을 잡아주기 때문에 멀쩡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점프 후 착지하거나, 누군가와 부딪히는 순간, 안전벨트 없는 무릎은 속수무책으로 뒤틀리며 반월 연골판 파열, 관절연골 손상, 조기 퇴행성관절염이라는 2차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동원 교수는 “린지 본의 비극이 바로 이 시나리오의 극단적 사례”라고 말했다.

 

MRI ‘완전 파열’이 곧 수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MRI에서 ‘완전 파열’로 보인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곧바로 수술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MRI는 구조를 보여주지만, 실제 움직임 속에서 무릎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동원 교수는 “진료실에서는 영상보다 먼저 무릎 동요, 관절 부종, 근력 회복 정도, 관절 가동 범위, 단일 다리 점프와 착지 동작, 신경근 제어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의학적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로 전방십자인대가 없어도 일상생활은 물론 고강도 스포츠까지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스포츠의학에서는 '코퍼(Coper, 적응자)'라고 부른다. 보존적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선별된 그룹이다.

 

반대로, 무릎이 자꾸 무너지는 느낌(Giving Way)이 들거나 이전 활동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논 코퍼(Non-Coper)'라 한다. 논 코퍼에게는 조기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이동원 교수는 “코퍼는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며 “충분한 근력 회복, 신경근 조절 훈련, 객관적 기능 검사를 모두 통과한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6m 한 발 뜀뛰기, 일상생활 기능 점수(KOS-ADLS), 무릎 자신감 지수, 무릎 어긋남 횟수 등 네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 코퍼로 분류된다”고 전했다.

 

린지 본의 선택이 특히 위험했던 이유

린지 본은 이미 여러 차례 무릎 손상과 인대 재건술을 경험한 무릎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무릎 주변 근육과 신경계의 보상 능력이 상당 부분 소진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에 알파인 스키라는 종목 특성이 더해진다. 고속 상태에서 단일 다리에 체중이 실리고, 깊지 않은 무릎 굴곡에서 회전 모멘트와 전방 전단력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는 전방십자인대에 가장 가혹한 생체역학적 조건이다. 이동원 교수는 “보호대는 심리적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런 순간적인 회전력과 전단력을 인대 대신 막아주지는 못한다”며 “또한, 신경과 근육의 연결 고리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복귀는 안전벨트 없이 고속 주행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복귀, '느낌'이 아니라 '수치'로 결정해야

비수술 치료는 단순히 쉬는 선택이 아니다. 관절 부기 조절과 대퇴사두근 재활성화에서 시작해, 신경근 훈련과 협동 훈련, 착지·방향 전환 동작 교정까지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초기에는 논 코퍼였던 환자들도 이러한 기능 회복 프로그램을 거치면 상당수가 기능적 코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라는 주관적 판단은 재부상의 지름길이다. 스포츠 복귀를 결정하기 전에, 다음의 객관적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1. 대퇴사두근·햄스트링 근력: 건강한 다리 대비 90% 이상 회복

2. 한 발 점프 테스트(4종): 양쪽 대비 90% 이상 + 적절한 움직임(무릎 안쪽 꺾임 없이 착지)

3. 국제무릎기능평가설문지(IKDC) 주관적 무릎 평가: 93점 이상

4. 심리적 준비도: 무릎에 대한 불안·두려움 없이 전력 동작이 가능한 심리 상태

5. 무릎 무너짐(Giving Way): 0회

 

비수술 치료, 이런 환자가 적합하다.

현재까지의 근거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 비수술적 접근을 우선 고려해 볼 수 있다.

▲ 전방십자인대 단독 파열, 즉 반월 연골판이나 다른 인대의 동반 손상이 없는 경우

▲ 스크리닝 검사에서 코퍼로 분류된 경우

▲ 체계적인 기능 회복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환경과 의지가 있는 경우

▲ 활동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중년 이상인 경우에도 유리

 

린지 본은 통산 84승의 월드컵 우승 기록을 가진 역대급 선수였다. 그럼에도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된 상태에서 시속 130km의 활강을 견딜 수 없었다. 이것은 정신력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생체역학적 한계이다. 전문가의 정밀 스크리닝을 통해 내 무릎이 진짜 '코퍼'인지 확인하고, 과학적으로 설계된 신경근 훈련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하며, 객관적 수치로 복귀 시점을 결정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전방십자인대 파열 이후 무릎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이동원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전방십자인대 파열 후 통증이 가라앉으면 다 나은 것 같다는 착각이 온다. 하지만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MRI가 아니라 기능적 안정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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