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낮은 겨울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있다. “너 추운 곳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
많은 일반인은 입이 돌아간 듯한 모습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하지만, 이는 치료 시기를 놓치면 영구적인 장애를 불러올 수 있는 ‘안면신경마비’ 일 수 있다.
▲‘안면신경마비’에 대애 설명하고 있는 박정미 교수
강릉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정미 교수는 “‘추운 곳에서 자면 입이 돌아간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며, “체온이 낮아진 상태에서는 면역 기능이 떨어져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해지는데, 감염은 안면신경마비의 주원인이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안면신경마비로 병원을 방문한 사람은 △2020년 8만7179명 △2021년 9만1251명 △2022년 9만2435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박정미 교수는 “낮은 기온은 면역 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우리 몸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율신경계에도 교란을 준다”며, “추운 곳에서는 얼굴 및 두부 근육과 혈관이 수축하면서 안면 부위의 혈액순환도 원활하지 못하게 되어 안면신경마비가 더 잘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얼굴 신경이 마비되는 안면신경마비
안면신경마비는 얼굴 신경이 마비되는 질환으로 대부분 편측(한쪽 얼굴)에만 발생한다. 이로 인해 정상 쪽 얼굴만 움직일 수 있어, 얼굴이 전반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게 되는 질환이다.
이마부터 입까지 주름을 잡을 수 없고, 한쪽 입을 움직이기 어려워 양치를 하거나 식사를 할 때 마비된 쪽으로 침이나 음식물을 흘리기 쉽다.
또한, 마비가 온 쪽 얼굴의 눈이 잘 감기지 않아 눈이 뻑뻑하고 흐려 보일 수 있으며 고막에도 영향을 주어 소리가 울려 들리는 느낌이 있을 수 있다.
안면신경마비는 감염, 종양, 외상, 선천성 질환 및 대사성 질환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크게 뇌경색, 뇌출혈, 뇌종양 등 뇌질환으로 발생하는 ‘중추성 안면신경마비’와 말초신경계(뇌 바깥의 신경경로)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로 나뉜다.
이 중 말초성 안면신경마비가 전체의 약 80~90%를 차지한다.
중추성 안면신경마비의 경우 원인이 되는 뇌질환에 따라 갑작스러운 심한 두통, 시야장애, 어지럼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귀 먹먹함, 귀 뒤 쪽의 통증, 미각 이상, 눈물 또는 침 분비량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
◇ 저절로 낫는다고 방치하면 영구적 장애 불러와
안면신경마비는 저절로 낫는 것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치료 골든타임을 벗어나면 후유증이 남아 영구 장애 확률이 높아진다.
안면신경마비 환자의 치료 골든타임은 48시간 이내로, 늦어도 3일 안에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즉, 최대한 빨리 병원을 내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정미 교수는 “골든타임이 지난 환자의 약 30%는 완전 회복이 되지 못하고 후유증이 남게 된다”며, “골든타임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 영구 장애 확률을 절반인 약 15% 정도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이것’부터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비가 온 쪽의 눈을 보호하는 일이다.
눈이 잘 감기지 않으면 우리 눈의 표면인 각막이 공기에 계속 닿게 되어 노출성 각막염이 생길 수 있다.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했을 경우, 수시로 인공눈물을 넣어 각막을 보호해야 한다.
더불어 안면신경마비 발생일로부터 약 1~2주간은 신경 손상이 진행되는 시기로, 이 기간에는 마비된 얼굴에 심한 자극이 가해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 안면신경마비 진료는 어느 과?
안면신경은 해부학적으로 귀를 통과하여 얼굴에 다다르며, 안면신경마비의 대부분은 뇌질환과 무관한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다.
중이염과 내이염도 말초성 안면신경마비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비인후과에 방문하여 귀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박정미 교수는 “대상포진 감염으로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한 경우 청력신경과 전정(균형)신경이 안면신경과 같이 손상될 수 있어, 이비인후과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이외에도 진주종성 중이염이나 안면신경종양으로 인한 압박의 경우,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비인후과는 안면신경마비의 정확한 진단과 초기 약물치료부터 시술과 수술, 타 진료과 협진까지 모두 진행할 수 있는 곳으로,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했다면 이비인후과 진료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 안면신경마비의 진단법
진단은 임상적 평가와 검사가 이루어진다. 문진과 신체검사를 통해 얼굴 비대칭의 정도를 관찰하고 안면신경마비의 중증도와 말초성 또는 중추성 여부를 구분한다.
신경전도검사(ENoG), 근전도검사(EMG)를 이용해 안면신경마비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예후 판단과 수술적 치료 결정에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MRI나 CT 등 영상학적 검사를 진행하여 안면신경과 주변 구조물들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치료법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 △물리치료 △보톡스 주사치료 △수술적 치료로 나뉜다.
약물치료는 대표적으로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데, 마비가 진행되고 있는 안면신경의 염증을 줄이고 신경의 회복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 최대한 빨리 스테로이드를 투여할수록 치료 효과가 좋다.
이 외에도 항바이러스제, 혈액순환제, 비타민 B 등이 처방될 수 있다. 약 1~2주간의 급성기가 지난 이후에는 물리치료(안면재활치료)가 도움이 된다. 물리치료는 회복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좋다.
발생일로부터 약 4주 이내에 큰 호전이 없는 경우, 보톡스 주사치료가 도움이 된다. 박정미 교수는 “소량의 보톡스를 정상 쪽 얼굴 여러 군데 나누어 주사하게 된다”며, “이는 마비가 온 쪽 얼굴 근육의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안면신경 재생을 자극하며, 얼굴 비대칭을 개선해 미용적인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적 치료인 안면신경갑압술은 완전 마비에 가까운 중증 안면신경마비와 외상으로 인한 안면신경마비에만 제한적으로 진행된다.
시간이 지나도 안면신경마비가 회복되지 않거나 후유증이 남았을 경우, 안면재건 수술(근육 또는 신경 이식술) 또는 성형수술이 시행된다.
◇ 주저하지 말고 빨리 병원에 내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 건강한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 관리, 보온 유지가 중요하다. 또한, 미리 대상포진 예방주사를 맞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혈관과 신경에 영향을 주는 고혈압, 당뇨병, 신장 질환 등 기저질환 보유 환자는 면역력 증강에 더욱 힘써야 한다.
만성 중이염, 진주종성 중이염이 있는 환자도 정기적인 이비인후과 검진을 통하여 관리하는 것이 좋다.
강릉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정미 교수는 “안면신경마비를 완전히 예방할 방법은 없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회복될 수 있다”며, “주저하지 말고 곧바로 병원에 내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